항목 ID | GC0570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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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信女學院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시 지역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변천]
영신여학원은 1922년 8월 군산 개복동 기독 청년회에서 창립하였다. 창립 당시에는 고등과를 두었으나 1924년 4월부터 보통과만을 운영하였다. 보통과 6년을 운영하다 경영 곤란으로 4년으로 단축하여 유지해왔다.
영신여학원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군산 시민의 지원으로 유지되어 왔으나, 1931년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도학무과에서 군산에 이미 보통 학교가 있는 상황에서 보통 학원을 용인할 수 없으니 잡종 학교로 인가를 받기 전에는 폐교할 것을 요구하였다. 영신여학원의 경영을 담당하고 있었던 군산 기독교회에서는 잡종 학교로 인가를 받기 위한 4천~5천 원의 기본금을 모으기 어려웠으므로 존폐문제를 토의하였다. 한편에서는 이미 천원을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머지 금액을 기부 받아서 수업 연한 2년 정도의 중등 학교로 승격시키자는 측과 다른 한편에서는 학교를 폐쇄하고 그 자리에다 유치원을 설립하자는 측이 있었는데 결국 후자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1931년 6월 10일부터 영신여학원 자리에 영신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교육 활동]
영신여학원은 1922년 8월 창립 당시에는 고등과를 두고 보통 학교 졸업 정도의 학생을 모집하여 교수하였는데 생도가 17명~18명에 불과함으로 1924년 3월을 마지막으로 고등과는 폐지하고, 1924년 4월부터 보통과 1학년 50명과 2~3학년 약간을 모집하여 교수하였다. 이후 영신여학원은 보통과 6년제로 운영하였으나 운영이 곤란하여 4년제로 단축하였다.
영신여학원은 군산 시민들의 지원으로 유지되는 학교였으므로 학생들을 교육했을 뿐만 아니라 학원의 교사를 1920년대 중반 군산 민족 운동의 공간으로도 활용하였다. 군산의 우리 물산 장려회 창립 총회가 영신여학원에서 열렸다. 하지만 1927년을 전후하여 영신여학원의 대여가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현황]
영신여학원은 군산 개복동 기독 청년회에서 창립하였다. 그 기금은 개복동 기독 청년회에서 후원한 통영 청년회 활동 사진 순회대의 상연 이후 통영 청년회에서 이익금 600원을 군산의 유년 사업을 위해 쓰라고 기증한 것이었다. 영신여학원의 운영은 군산 개복동 교회에서 담당하였는데 경비를 지원하기 위하여 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후원회만으로 운영이 곤란하였으므로 다양한 방법으로 경비를 모아 운영하였다. 군산 각 단체 후원으로 군산좌에서 음악 가극 대회를 열어 기금을 모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