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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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八一五光復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종안 |
[정의]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전을 계기로 전라북도 군산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이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일.
[개설]
1945년 8월 15일 중대 뉴스가 발표된다는 예고에 식민지 백성은 숨죽이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심한 잡음과 함께 들려오는 떨리는 목소리, 그것은 뜻밖에도 일본 천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찾아온 광복이었다.
[경과]
광복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빛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새 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1889년(광무 3) 개항 이후 일제가 근대화시킨 군산도 ‘수탈의 도시’란 치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맞는다. 그러나 거리에서 감격의 만세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한 나날이 지속하였다.
[결과]
해방 정국에서 군산이 다른 지방보다 불안정했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주인 노릇을 하면서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인이 3,000가구에 약 1만 2000명 가까이 살고 있었고, 그들의 가구 수와 비슷한 적산 가옥(敵産家屋)의 소유, 입주, 매각 문제 등으로 갈등이 증폭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인을 대신해서 행정을 처리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설상가상으로 1945년 9월 8일 한반도에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은 북위 38도선 이남에서 군정(軍政)을 실시한다는 미군 사령부 명령 제 1호를 선포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자생적인 국내 치안 조직도 해산시키고, 일제 식민 통치 기구를 대부분 계승하였다. 특히 독립 지사를 고문했던 경찰들의 복귀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