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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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有聲 |
이칭/별칭 | 자진(自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두헌 |
활동 시기/일시 | 16세기 전반 경 - 김유성 임피에 정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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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김유성 거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
묘소 | 김유성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관원리 |
성격 | 입향조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대표 경력 | 천안 군수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세거한 김해 김씨 도사공파 입향조.
[개설]
김유성(金有聲)은 16세기 전반 경에 천안 군수를 지냈다. 해남으로 유배를 당하였다가 유배가 풀리자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현재의 군산시 임피면[옛 임피현 동면 구산]에 입거하였는데, 이후 김유성의 후손들이 군산시 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가계]
김유성의 자(字)는 자진(自振)이다. 임피에 세거한 김해 김씨(金海金氏) 도사공파(都事公派)의 입향조이다. 생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도사공파 중시조(中始祖)이며 도사(都事)를 지낸 김린(金璘)의 아들이다. 장인은 목사(牧使)를 지낸 한수원(韓遂遠)[본관 청주]이다.
[활동 사항]
김유성은 통훈대부 천안 군수를 지냈는데, 해남으로 유배를 갔다가 풀려나 서울로 돌아오다가 임피(臨陂) 동면(東面) 구산(龜山)에 입거하였다. 군수(郡守)가 입거한 곳이라 하여 그 일대의 뜰을 군수평(郡守坪)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유성의 증손 김개(金凱)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김유성이 임피에 입거한 시기는 16세기 전반 경으로 추정된다.
김유성은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 중 맏아들 김맹석(金孟錫)의 후손들이 군산시 서수면 일대[축동리, 관원리, 마룡리, 화등리, 서수리, 보석리, 금암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관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