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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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允迪 |
이칭/별칭 | 일장(一長),유재(桑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두헌 |
출생 시기/일시 | 1403년 - 노윤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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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463년 - 노윤적 사망 |
활동지 | 노윤적 활동지 -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
묘소 | 노윤적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오동리 보천동 |
성격 | 입향조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대표 경력 | 이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입거한 안동 노씨 이조판서공파의 입향조.
[개설]
노윤적(盧允迪)은 안동 노씨 시조 노만(盧만)의 7세손이고, 15세기 전반에 안동에서 처가가 있는 임피로 입거하였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은 노윤적이 이조 판서를 지냈다 하여, 자신들을 이조판서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가계]
노윤적의 자(字)는 일장(一長)이며, 호(號)는 유재(桑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림학사와 문하시중 등을 지낸 노숭(盧崇)이고, 할아버지는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노원명(盧元明)이며,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노협(盧浹)이다. 외할아버지는 한양 조씨이며, 장인은 양권(梁權)[본관 남원]이다.
[활동 사항]
노윤적은 1403년(태종 3)에 태어났고, 1463년(세조 8)에 사망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재주가 남달라 세상 사람들이 신이하다고 일컬었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추운 겨울날 온갖 약을 써도 차도가 없고 잉어를 먹기를 원하자 주야를 가리지 않고 물가에 이르러 하늘에 부르짖으니 잉어가 물어 튀어 나왔다. 이에 세상 사람들이 옛적 서진 시대 왕상(王祥)의 효도에 비유했다고 한다.
세종 조에 예문관에서 강연을 맡아보았으며, 이후에 이조 판서에 역임되었다. 성리학에 통달하였으며, 천문, 역법(曆法), 종율(鍾律)에 통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묘가 서수면 오동리 보천동에 있는데, 부(父)와 조부(祖父)의 묘는 안동(安東)에 있다. 아내는 남원 양씨(南原梁氏)이며 교리(校理)를 지낸 양권(梁權)의 딸인데, 양권(梁權)은 1401년(태종 1)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남원 양씨 옥구 입향조인 양의생(梁宜生)의 둘째 아들이다. 노윤적이 15세기 중엽에 임피현 서수면에 입거한 이후 그의 후손들 중에 일부가 서수면 일대[마룡리, 서수리, 장상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여 왔다. 또 다른 후손들은 김제, 익산 등지에 거주하였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 오동리 보천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