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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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陽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두헌 |
활동 시기/일시 | 고려 말 조선 초 - 채양생 고려 왕조 멸망 후 임피로 낙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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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고려 말 - 채양생 예조 참의 재직 |
거주|이주지 | 채양샹 이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
묘소 | 채양생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대명리 향림 기린봉 |
성격 | 입향조 |
성별 | 남 |
본관 | 평강 |
대표 경력 | 예조 참의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군산[옛 임피현] 지역에 세거한 평강 채씨 소감공파 입향조.
[개설]
채양생(蔡陽生)은 임피에 세거한 평강 채씨 소감공파 입향조이다. 고려가 멸망하자 그 한을 품고 손자 채효손(蔡孝孫)과 재당질[7촌 조카] 채지생(蔡智生)을 대동하고 당시 임피현 성산면 대명리 향림곡에 있는 불사(佛舍)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이후 채양생의 후손들이 개정면, 대야면, 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채양생의 후손들은 채양생이 소감을 지냈다는 연유로 자신들을 평강 채씨 소감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가계]
채양생은 평강 채씨 시조 채송년(蔡松年)의 6세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판삼사사를 지낸 채모(蔡謨)이고, 할아버지는 정승을 지낸 채종린(蔡宗璘)이며, 아버지는 전법 판서를 지낸 채문소(蔡文紹)이고, 외할아버지와 장인은 미상이다.
[활동 사항]
채양생은 고려에서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냈다. 고려가 멸망하자 그 한을 품고 손자 채효손(蔡孝孫)과 재당질[7촌 조카] 채지생(蔡智生)을 대동하고 배를 타고 남하하여 당시 임피현 성산면 대명리 향림곡에 있는 불사(佛舍)로 내려와 은거(隱居)하였다. 아들 채왕택(蔡王澤)[채효손의 아버지]은 고려 왕조가 멸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은신한 72현인(賢人) 중 한 명이다.
채양생이 임피에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개정면 발산리, 아산리, 통사리, 운회리, 대야면 산월리, 서수면 마룡리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후손들은 채양생이 소감을 지냈다는 연유로 자신들 평강 채씨 소감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증손자 채담(蔡潭)의 처는 황희 정승의 손녀이고, 현손 채자침(蔡子沈)의 처는 양녕 대군의 손녀이다. 곧, 채양생이 임피에 입거한 이후 그 후손들은 당분간 중앙의 벌족들과 혼인 관계를 형성하였다.
[묘소]
채양생의 묘는 임진왜란으로 그 사실이 기록된 문헌이 없어져서 실전(失傳)하였다가, 1817년(순조 17)에 령호군공(領護軍公) 묘소 위에서 묘지명(墓誌銘) 한 편(片)을 발견하였는데, ‘채양생’이라는 성명만 판독할 수 있었을 뿐, 처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묘는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대명리 기린봉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