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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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晩秀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주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 출신의 기업가.
[개설]
이만수는 서울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군산 출신이다. 중학교 졸업 후 조선 총독부 소속 토지 측량과 기수로 일하기도 했다.
[활동 사항]
이만수는 1891년 7월 10일 출생하였다. 1924년 고향인 군산으로 내려와 11월 경성 고무 공업소 대주주 겸 사장으로 취임해 고무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1930년 6월 군산 상공 회의소 평의원을 맡고, 후에 부회장까지 맡았다. 당시에 군산 상공 회의소 의원은 대부분 일본인으로, 조선인이 의원을 맡은 일은 이만수가 처음이었다.
이만수는 친일 단체인 조선 임전 보국단(朝蘚臨戰報國團)의 발기인으로서 일제 강점기 전시 사상 통일의 구체적 방침과 군수 자재 헌납 운동을 결의하기도 했다.
또한 이만수는 당시 일본이 진행했던 사업에 자금을 댔다. 1939년 8월 군산 신사 개축비로 1,000원을 헌납했고 1940년 5월 전북 군산 향군 분회 사격장 건설비 명목으로 1,700원을 헌납했다. 특히 1944년 3월 중일 전쟁과 관련해 일본 육군성에 국방비 1만 6천원을 헌납한 공로로 감수 포장(紺綬褒章)[일본 천황이 수여한 훈장]을 받기도 한다.
해방 이후 이만수는 1949년 3월 9일 반민 특위 피의자 명단에 포함되어 체포되지만, 5개월 만에 질병을 이유로 보석 신청이 허가됐다. 반민 특위가 강제 해산 된 이후 대한 고무 공업 협회 부이사장, 대한 아연필 협회 이사장, 조선 화학 비료 주식회사 사장, 한국 고무 주식회사 사장, 대한 비료 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해방 후에도 활동을 유지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조선 총독부가 사라지고 미 군정청이 정치, 경제, 사회 등 남한의 모든 분야에 대한 전권을 장악했다. 일본인들이 건설한 각종 산업 시설 가운데 규모면에서나 사회 및 시설의 성격에 따라 미 군정청이 직접 장악을 하고 적산 귀속 기업체를 남한의 기업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종업원이나 직원들에게 관리권을 넘겨주기도 했다. 이 같은 처리 방침에 따라 북선 제지 화학 공업 군산 공장도 당시 만월표로 유명한 고무신 업계의 대표 주자인 경성 고무 회사 사장 이만수[제1대 한국인 관리자]에게 관리 인수 보증금 95만원에 인도되었다. 하지만 미 군정청에 실권을 장악한 최고 책임자와의 언어 장벽으로 관리인으로서의 역할이나 기능면에서 권한 행사를 못하던 가운데 좌익들의 소요에 어려움을 겪는 등 2~3개월 만에 복선 제지를 정리하고 1946년 2월 제2대 관리인 김원전에게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