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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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壽男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희진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김수남은 1919년 3월에 일어난 군산 공립 보통 학교 방화 시위를 주동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5일 영명 학교[현 군산 제일 중·고등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독립 만세 운동이 있은 뒤에 군산 공립 보통 학교 학생들도 비밀리에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이 거사의 중심 인물은 군산 공립 보통 학교 학생인 문종묵·김학술·김종련·라명조·신형식과 권재길·김수남·이남률 등이었다.
영명 학교와는 달리 일본인 교장에 관리를 받았던 군산 공립 보통 학교에서는 궐기하기가 쉽지 않자 3월 14일 김학술·라명조·신형식 등이 중심이 되어, 학생 70명이 단체로 퇴학원을 제출하여 항거했다. 이에 학교 측은 학교에 들어와 공부하라고 학생들을 설득하였다.
김수남과 이남률은 군산 공립 보통 학교가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는데 방해가 된다고 판단, 불태워 없애버리기로 결심한다. 1919년 3월 23일 밤 10시, 군산시 장미동의 약국에서 알코올과 군산시 장재동에 있는 이름 없는 상점에서 솜을 사가지고 학교 교사(校舍) 동쪽 승강구에 불을 질렀다. 이 방화로 학교가 불타 없어지자 경찰은 이를 만세 운동 시위자 소행으로 단정하고 대대적인 범인 색출 작업에 나섰다. 결국 주동자인 김수남·이남율은 체포되어, 1919년 5월 24일 광주 지방 법원 전주 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김수남은 징역 10년, 이남률은 징역 7년 형을 언도받았다. 옥살이를 마친 이후에도 김수남은 꾸준히 항일 운동을 계속하였고 1967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 포장과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