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8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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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放送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조종안 |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통하여 보도·음악·강연·연예 등을 보내어 널리 보고 듣게 하는 일.
[개설]
방송이란 여러 가지 기호[문자, 숫자, 도형, 도표, 이미지, 음성, 음향, 영상]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유·무선 통신을 이용해 다수 사람에게 송신하는 일을 말한다. 군산에는 1945년 해방이 되고 24년이 지난 1969년 라디오 방송국[서해 방송]이 개국한다.
[근현대 군산의 방송]
군산 시민이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기 시작한 시기는 전북 이리[익산]에 방송국이 개국한 1938년 10월 1일로 전해진다. 조선 방송 협회 산하 이리 방송국에서 시작한 라디오 방송은 출력 500W, 주파수 570㎑, 호출 부호 JBFK이었으며 아나운서 3명이 진행했다. 이리 방송은 해방과 함께 ‘대한 방송 협회 이리 방송국’ 호출 부호 HLKF로 개칭된다.
이리 방송국 보다 11년 앞선 1927년 2월 16일 경성 방송국이 전파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송국 기술직 신입 사원 봉급이 2원이던 당시 고급 라디오 한 대 가격이 1,000원을 웃돌았고, 청취료와 부속품을 교환하는 데 월 4원이 필요했으며, 지방 방송국도 중계소도 없던 시절이어서 군산에서는 청취할 수 없었다.
군산은 인근 지역에 미군 비행장이 있어 1950년대부터 TV 시청이 가능했다. 비행장 방송[AFKN]은 뉴스와 대담, 영화 등을 방영했는데 일반 시민은 쉽게 볼 수 없었다. 비행장에 TV 방송국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텔레비전 자체가 귀하던 시절이었고, 안테나 시설을 갖추고 있어도 아나운서 멘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초에는 군산 방송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유선 방송이 ‘군산 문화사’란 이름으로 영업을 개시한다. 사람들은 ‘스피커 방송’이라 하였고, 경찰서 5거리 영동 입구 2층 건물에 방송 시설을 갖춘 7~8평 크기의 사무실이 있었으며, 서울 중앙 방송국[KBS] 라디오 프로를 중계하였다. 밤에는 남자 아나운서가 전화와 엽서를 통해 사연과 신청곡을 받아 LP판을 틀어주는 음악 방송도 진행했으며 시그널 뮤직은 ‘번지 없는 주막’ 경음악이었다.
트랜지스터가 부의 상징이던 시절, 군산 문화사는 요즘의 케이블 TV처럼 조그만 스피커가 부착된 정육면체 나무통을 가정집 선반이나 벽에 달아주고 매월 200~300원의 청취료를 받았다. 채널 선택권도 없고, 음량 조절이 중, 대 두 단계만 가능할 정도로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변두리 지역에서 인기가 좋았다. 서민들의 친근한 벗이었던 ‘스피커 방송’은 라디오 보급률이 높아지는 1960년대 후반 서해 방송 개국을 앞두고 문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