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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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浦靈神堂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
집필자 | 진용선 |
의례 장소 | 나포 영신당제 -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원나포 마을 공주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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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당제 |
의례 시기/일시 | 매년 1월 15일 |
신당/신체 | 있음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원나포에는 금강 변에 자리한 공주산(公主山)을 주산으로 한 당산과 당산제가 있었다.
[연원 및 변천]
나포면 원나포리는 과거에 나리포 혹은 나시포라고 불리웠다. 원나포에 위치한 영신당은 공주산이라고 하는 금강으로 돌출해 있는 조그마한 산 아래 위치하고 있다. ‘나리포’란 명칭은 나리포창에서 유래한 말로 1720년(숙종 46) 진휼청에서 공주, 연기의 입구인 나리촌에 설치한 점포에 근원을 두고 있다.
나리포의 용도는 도서 지역에 가뭄이 들면 내륙의 미곡과 섬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물물 교환 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임시 시장이었다. 이후 1722년(경종 2)에 제주도에 기근이 들자 영남미 4천석과 호남미 3천석을 보내어 구휼함을 계기로 나리포는 제주도를 돕기 위한 목적의 포구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군산에는 제주 고씨가 많이 거주하게 된다.
나리포가 언제부터 포구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원나포 마을에서는 허씨 성을 지닌 허선달이라는 사람이 고군산 군도에서 와서 처음 포구를 열었다고 전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임피현 산천조에는 “공주산은 현의 북쪽 13리에 있는데 전하는 말에 공주로부터 떨어져 나왔기에 이름한다고 한다. 공주산 밑이 진포인데 민가가 즐비하고 배 부리는 것을 상업으로 한다”라고 적고 있어 이미 조선 전기에도 상당한 규모의 어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나리포[원나포]의 공주산에는 영신당이라는 당집이 있어 근래까지 당산제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현재는 빈터만 남아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군산에서 서북쪽으로 약 18.1㎞ 떨어진 나포면의 구 소재지 뒷산인 공주산 중턱에는 70여 호의 주민들이 대를 이어 섬겨 오던 당집이 있다. 당집은 초가 단칸으로 되어 있으며, 마루에 올라서 당집 문을 열면 북쪽 벽의 중간에 선반을 지르고, 좌우측에는 곡식 한 말들이 독에다가 묵은 쌀을 가득 담아서 백지로 봉한 뒤에 뚜껑을 반드래기로 덮고서 이를 할머니와 할아버지 당산이라고 불렀다. 당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지냈으며, 경비의 일체는 마을 사람들이 부담하였다.
[절차]
마을에서 제를 지내기 며칠 전부터 걸궁굿을 하며 돈이나 쌀을 거출하였다. 당제의 절차는 마을 사람들이 거둔 쌀이나 돈을 미리 당집을 지키는 당주집에 가져다주면 당주가 시장에 가서 제물을 사다가 정월 열 사흗날부터 음식 장만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샘에다가 금줄을 쳐서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물을 깨끗이 품어 낸 다음에 새로 고인 물을 길어다가 제물을 장만한다. 이때 당주는 목욕 재개를 함은 물론이었고 변소에 다녀온 옷은 입지 않고 청결하게 행동을 하였다. 음식을 장만하는 사람은 마을에서 매년 궂은 일이 없고 마음씨가 고우며 음식을 잘 장만하는 할머니를 모셔다가 음식을 장만하고, 대가로는 품삯을 주거나 그해 일을 해 주기도 한다.
음식을 장만할 때는 일체 손을 대지 않고 그릇으로만 하되, 말도 하지를 않고 음식 맛을 보는 일도 없다. 정결하게 음식이 장만되면 당주는 정월 열 나흗날 밤 자정이 되어서 인기척이 없을 무렵에 혼자서 밥·떡·술·과일·전·돼지머리 등을 깨끗한 새 발채에다가 짊어지고 공주산으로 향하여 당집 뒤에 있었던 제단석의 넓다란 바위에다 차려 놓고 산신제를 먼저 지낸다.
이튿날 새벽 5시쯤에 바닷가에 있는 위안당제(慰安堂祭)인 각시당의 음식을 남겨 두고 깨끗한 새 발채에 다시 음식을 짊어지고 영신당으로 향한 후, 마을 할머니로 하여금 제물을 차려 놓게 한 다음에 좌우에 촛불을 켜놓고 소지를 올릴 준비를 한다. 이와 같은 진설이 끝나면 마을에서 제일 유식하고 그해 궂은 일이 없는 남녀노인이 제주가 되어 예로부터 전해오는 축문을 읽는다.
축문이 끝나면 술을 올리는데 이때 쓰이는 제주는 특별히 양조장에서 특주로 주문을 해다가 쓴다. 술을 올리고 재배를 하고 나서는 그해의 풍어와 풍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무병을 비는 축원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나이별로 들먹여 가면서 소지를 사른다. 이렇게 해서 당제가 모두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면서 하루 종일 즐겨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