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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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壬辰倭亂 |
영어음역 | Imjinwaeran |
영어의미역 | Imjin War |
이칭/별칭 | 임진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윤대준 |
[정의]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조선 시대의 전쟁.
[역사적배경]
오늘날 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금천현(衿川縣)과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에 속하였고 수도인 한양 및 바다와도 가까워 전란의 중심권에 속해 있었다. 이 지역은 의병 활동 또한 매우 활발한 지역이었으며 전란의 한 복판에서 피해 또한 막심하였다.
[발단]
구로 지역은 한양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바다와 인접한 지역인 만큼 충청·전라·경상도 등 삼남으로부터 조달되는 군량미의 중요 수송로였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의 초년 기록을 담고 있는『진사록(辰巳錄)』을 보면 유성룡은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경기도의 방어력을 높이자고 주장하면서 “광주·과천·금천·안산·수원·남양 같은 고을의 군사는 한 사람의 장수에게 통솔하게 하여 한양의 남쪽 방면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경과]
구로 지역에서는 의병 활동 또한 활발하였다. 안성에서 일어나 경기 남부를 지켜낸 의병 홍계남(洪啓男)과 함께 김천일(金千鎰)은 수원 독산산성과 강화도를 거점으로 부천·부평 지역에 이르기까지 활약하였고, 양화도전투(楊花渡戰鬪)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부천지명유래집』을 보면 이 지역에서 행주산성 전투를 전후한 시기에 벌응절리·장대산 등에서 벌인 의병 전투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명의 원군이 진격해 오자 당시 서인계 판서 서성(徐渻)은 서울 수복 작전의 일환으로 명의 장수에게 황해도 연안 배천에서 배를 타고 김포에 도착하여 부평·부천을 거쳐 수원·용인·죽산으로 진격함으로써 용산창에 양곡을 쌓아 놓고 서울에 주둔한 왜적의 배후를 기습하자는 계획을 진언하기도 했다.
[결과]
이렇듯 금천·부평지역은 전란의 한 복판에 있었기에 그 피해도 컸다. 전쟁 발발 이듬해인 1593년 3월 경기좌도관찰사겸순찰사 성영(成泳)은 선조에게 경기도 피해 상황에 대하여 “진위·수원·남양·안산·금천·인천 일대는 왜적들의 온 부대가 나와 날마다 분탕질을 하고 더러는 밤을 타고 습격하니 살아남은 백성들이 흉적의 창·칼 밑에 다 죽어갈 형편입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선조가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에게 “남양·인천·안산·금천 및 강원도 춘천 일대에서 왜적이 멋대로 노략질을 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금천과 부평 일대에 왜적의 피해가 극심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