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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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川桂陽山城 |
영어의미역 | Gyeyangsa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고산성(古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조선/조선 |
집필자 | 안홍민 |
[정의]
구로 지역에 일부가 속해 있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산성.
[개설]
인천 계양산성은 테뫼식 산성으로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에 대한 최초의 문헌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으로 부평도호부 고적조에 “계양산 고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1,937척이며 지금은 무너져 내렸다”라고 되어 있다. 계양산은 주봉의 높이가 해발 395m로 인천 내륙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며, 조선시대 구로 지역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던 부평도호부의 진산이기도 하다.
[건립경위]
정확한 건립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최초 건립 시기는 삼국시대인 것으로 여겨진다. 계양산의 서쪽은 서해에 닿았고, 나머지 방향으로는 대부분 낮은 구릉이나 평지여서 시계(視界)가 넓다고 할 수 있다. 인천 계양산성은 산 정상부가 아니라 동쪽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산성의 축조 목적과 상당히 연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바다를 통해서 접근하는 적이 아니라 나머지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한 시설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위치]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의 계양산 동쪽 능선 일대에 위치해 있다.
[형태]
인천 계양산성은 테뫼식 산성으로 계양산 동쪽 일대에 축조되었다. 석성을 먼저 쌓고 이후 그 안쪽에 흙을 다져가며 쌓은 내탁식 공법을 이용하였다.
[현황]
계양산상의 성곽은 대부분 붕괴되었다. 현재 계양산의 정자가 있는 곳에서 계양산 정상을 향해 150m 정도 되는 지점 왼쪽, 즉 산성의 중간 부분에 높이 210㎝, 폭 356㎝ 되는 11단의 석축의 일부만 남아 있다.인천 계양산성 내부에는 동쪽과 북쪽으로 두 개의 문지와 수구의 흔적이 있으며, 헬기장과 체육공원, 정자 등이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인천 계양산성은 과거 구로 지역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던 부평부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은 산성이다. 이 산성의 건축으로 인해 적군이 부평부로 쉽게 침범할 수 없어 현재 구로 지역 일대가 전쟁으로 인한 큰 피해 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요충지였던 경기 지역의 방어 시설로서 상당한 연구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발굴 조사를 통해 내부에서 삼국시대의 것으로 생각되는 목간이 출토되어 역구 성과가 기대된다. 1992년 5월 15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0년 5월 22일 사적 제556호로 승격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