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17 |
---|---|
한자 | 金祐生 |
영어공식명칭 | Kim Woosaeng |
이칭/별칭 | 김우생(金佑生),문숙(文叔),양산(陽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출생 시기/일시 | 1372년![]() |
---|---|
활동 시기/일시 | 1396년 - 김우생 순천부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35년 - 김우생 사간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54년 - 김우생 승지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457년 11월 15일![]() |
추모 시기/일시 | 1807년 - 김우생 화암사 배향 |
사당|배향지 | 화암사(花巖祠)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 가산마을
![]()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상산(商山) |
대표 관직 | 승지(承旨) |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화암사(花巖祠)에 배향된 문신.
김우생(金祐生)[1372~1457]의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문숙(文叔), 호는 양산(陽山)이다. 할아버지는 판장군(判將軍) 김언(金彦), 아버지는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김운보(金云寶)이다. 형은 좌명공신(佐命功臣) 김덕생(金德生)이다.
김우생은 1372년(공민왕 21)에 태어났다. 정몽주(鄭夢周)[1377~1392]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주자(朱子)[1130~1200]의 학문을 흠모하여 주자의 호인 자양(紫陽)을 따서 호를 양산(陽山)이라 하였다. 1388년(우왕 14)에 이성계가 랴오둥[遼東]을 정벌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불가함을 역설하였다. 1396년(태조 5)에 특별히 순천부사(順天府使)에 제수(除授)되었다. 형 김덕생이 동료들의 투기로 억울하게 죽자 병을 칭탁(稱託)해 사직하고 나주(羅州)로 내려갔다.
김우생은 손수 『가례연의(家禮衍義)』를 모으고 『훈몽요어(訓蒙要語)』를 보충해 후생들을 교육하고, 정분(鄭苯)[?~1454], 성삼문(成三問)[1418~1456] 등과 교유하였다. 1435년(세종 17) 사간(司諫)에, 1454년(단종 2)에 승지(承旨)에 임명되었다. 1456년(세조 2)에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었다. 1457년 단종이 영월에서 죽었는데, 이때 김우생은 86세의 나이로 깊은 산에 들어가 통곡하였으며, 1457년 11월 15일에 자결하였다.
김우생의 묘소는 김우생이 거주하였던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陽山洞)에 있었다고 한다.
김우생은 광주에 있는 화암사(花巖祠)에 배향(配享)되었다. 화암사는 김우생과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제향(祭享)하는 사당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 가산마을에 있다. 1807년(순조 7)에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으며, 1908년에 현재 위치에 다시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