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7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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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社會運動 |
영어공식명칭 | Social Movement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섭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펼쳐진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위한 공적 활동 및 운동.
[개설]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사회 운동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정치 참여의 기회가 열림에 따라 공식적으로 정치 단체와 사회 단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사회 운동 전반에서 정치적 성격이 두드러졌다. 특히 광주 지역에서도 8월 30일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지역의 여성 대표들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인회를 결성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인회는 여권 신장 사업으로 '첩 축출 운동'을 펼치는 한편, 수피아학교 재건과 함께 YWCA 부활운동을 펼쳤다.
1945년 8월 15일, 광주 지역에 새로운 사회 단체로 전남도청에 근무하고 있던 청년들을 중심으로 도청을 지키기 위해 ‘조선인청년단’이 결성되었고, 같은 날 광주서중학교 강당에서 졸업생 100여 명이 모여 ‘화랑단’을 조직하였다. 해방 초기 분산된 청년 단체들이 통합 조직의 필요에 따라 8월 18일에는 '광주청년단'을 결성하여 해방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YMCA는 1945년 10월에 재결성되어 최흥종 목사가 다시 회장에 취임하고 교육 활동과 함께 소비조합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정치적 성격의 사회조직은 자취를 감추었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회 단체가 등장하였다. 이때 한국반공연맹, 재향군인회, 향군회관과 같은 반공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형성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 많은 사회 단체가 발족하였는데, 광주 지역에도 로타리클럽, 청년회의소, 라이온스클럽 등 국제적인 봉사 단체들이 이때를 전후해 등장하였으며, 업종별 조합 등의 조직도 발족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비합법적인 사회 운동 조직이 형성되기는 하였으나 군사정권 하에서 공식적으로 자리 잡을 수 없었고 정부의 탄압으로 와해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새마을운동과 같은 관(官) 주도의 국민 운동적 성격을 띤 운동들이 정부의 지원 하에 활성화되었으며, 사회 정화 운동, 바르게 살기 운동 등으로 현재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다.
1975년 6월 30일에 광주시에 민간 단체인 '새마을운동협의회'가 구성되었고, 새마을운동협의회와 반상회를 통해 실천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광주도 국민 운동의 조류와 함께 유신체제 반대 시위와 학생 운동이 활성화되었다.
1980년대는 5.18민주화운동으로 인해 각 부문별 사회 운동이 좌절을 겪으면서도 새롭게 활성화되었다. 노동 운동과 농민 운동을 비롯하여 지역 주민 운동, 여성 운동, 문예 운동, 학술 운동이 태동하여 확산되었다. 1980년대 사회 운동의 성장과 발전은 1987년 6월 민주화 대투쟁과 7월~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집약되었다.
광주의 지역 사회 운동은 5.18민주화운동 이후에 도시 재개발 정책을 둘러싼 철거민 저항 운동 외에 공해 추방 운동, 소비자 보호 운동, 여성 운동 등이 지역 이슈를 중심으로 부문별 사회 운동으로 새롭게 전개되었다. 특히, 1980년대 광주 지역에는 하남공단 신가리 주민 운동과 하남공업단지의 조성을 둘러싼 지역 주민 운동이 있었다. 하남 3차공단 조성 사업 과정에서 1988년 공단 편입지 주민들이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광주시청에서 시위를 벌였고, 1989년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이러한 하남공단 편입 주민의 집단적 대응은 도시 개발과 관련한 생활상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였고, 외부 운동 단체의 협력 없이 이루어졌던 주민 운동들 중 하나였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 광주 지역에서 1989년에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창립, 1992년 시민생활환경회의가 출범하여 환경운동 단체가 활성되었고, 1990년에는 지역에서 생활협동조합의 효시인 한마음공동체가 출범하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사회의 사회 운동의 흐름은 점차 변혁 운동에서 시민 운동으로 바뀌어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의 제도 개선과 정책 제안 중심의 애드보커시(Advocacy)[소비자의 신뢰나 지지를 얻기 위한 목적] 조직들이 등장하였고, 1995년부터 실시된 지방자치와 더불어 다양한 지역 및 주민 조직이 활성화되었다.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990년에 창립되어 정책 논의와 함께 시정 비판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 1994년에는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광주YMCA가 ‘시정지기단’을 구성하여 시정 감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8년에는 ‘참여자치21’이 결성되어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행정과 의정 활동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1990년대 시민 운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지역의 현안과 이슈에 대응하는 시민사회 단체 연대 모임의 등장이다. 1994년에는 광주직할시의 5.18 성역화 추진에 대응하여 ‘오월 성역화를 위한 시민연대모임’이 결성되었고, 시민 중심의 5.18 논의를 활성화시켰으며 성역화에 대한 대안 제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2000년을 전후해서 광주광역시에서는, 1990년대부터 확장되고 다양화된 부문별 사회 운동을 토대로 한 연대 조직과 연합 단체가 활성화되었다. 1998년에는 지역의 현안과 이슈에 대한 조직적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광주시민단체협의회가 출범하였다. 2000년에는 총선을 맞이하여 낙천·낙선 운동으로 결집한 광주의 문화예술인들이 광주전남문화연대를 결성하였고, 2004년에는 광주시민·사회단체총연합이 출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