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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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宜仁精舍 |
영어공식명칭 | Uiinjeongsa |
이칭/별칭 | 진보댁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동향 |
건립 시기/일시 | 1887년 - 진보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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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76년 - 의인정사 이전 |
현 소재지 | 의인정사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
원소재지 | 진보댁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
성격 | 전통가옥 |
정면 칸수 | 5칸[대문채]|7칸[정침] |
측면 칸수 | 1칸[대문채]|7칸[정침] |
관리자 | 영남대학교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영남대학교 민속촌 안에 있는 개항기 전통가옥.
[개설]
의인정사(宜仁精舍)는 이중철(李中喆)이 1887년(고종 24) 경상도 예안현(禮安縣)에 건립한 양반가옥이다. 이중철의 자는 윤명(允明),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이중철은 진성 이씨 의인(宜仁)파에 속한다. 의인파는 퇴계 이황의 둘째 손자인 이순도(李純道)의 후손들이 도산서원의 건너편 마을인 의인마을을 중심으로 번성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6년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에 있는 영남대학교로 이전하여 관리되고 있으며, 원소재지였던 의인마을의 이름을 따서 ‘의인정사’라 한다.
[위치]
의인정사는 원래는 옛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의촌동에 있었다. 1970년대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원소재지가 수몰 지역에 포함됨에 따라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이건하였다. 영남대학교 본관 뒤에 위치한 민속촌 입구에서 도보로 약 1분 거리에 있다.
[변천]
의인정사는 이중철이 1887년 예안현 의인마을에 건립하였다. 이중철이 대한제국 시절 진보군수(眞寶郡守)를 역임하여 댁호를 ‘진보댁(眞寶宅)’이라 하였다. 1970년대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의인마을이 대부분 수몰되자, 1976년 영남대학교로 이건하였다.
[형태]
의인정사는 영남대학교 민속촌의 지형에 따라 서북 방향으로 자리잡았다. 건물은 대문채와 정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솟을 대문이다. 왼쪽 2칸은 고방을 두었으며, 오른쪽에는 외양간과 온돌방이 각각 1칸씩 배치되어 있다. 원래 대문채는 정침의 왼쪽에 있었으나, 영남대학교 민속촌의 지형에 따라 정침의 왼쪽에 배치되었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의 口자형 주택이다. 정침은 크게 사랑채 공간과 안채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의 중문칸 오른쪽이 사랑채이고, 이중문으로 이우러진 중문칸을 들어서면 안채의 내정이다. 사랑채는 큰 사랑방-사랑마루-작은 사랑을 배치해 전체적으로 ㄱ자형의 평면을 이룬다. 각각 2칸의 규모이다. 중문칸은 외문과 내문으로 이루어진 이중문을 설치하였다. 그 결과 외문을 열어도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이중문을 지나면 안채의 내정이 나온다. 안채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2칸, 부엌을 두고 오른쪽에 고방을 두었다. 부엌 앞면에 고방과 아랫방 등으로 이루어진 좌익사를 연접시켰고, 오른쪽 고방 전면에는 건너방과 통래칸을 두어 사랑채와 연결하였다.
[현황]
의인정사는 영남대학교 민속촌 내에 있는 구계서원과 연계하여 한국전통문화체험, 전시회 등을 개최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口’자형 주택은 경상도 북부지방과 강원도 일부 지방 등 태백산맥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북부지방에 보다 많이 분포되어있다. 의인정사도 그런 ‘口’자형 주택 중 하나로 영남대학교 민속촌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 해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하고 상시로 건물을 관리하고 있어 상태도 양호하다. 의인정사는 개항기에 건축되었지만 남녀가 유별하다는 유교의 내외법을 지키는 공간구성과 조선의 ‘口’자형 주택의 특징을 그대로 계승하였고 별서와 가묘가 생략된 ‘口’자형 정침으로만 구성된 주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