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491 |
---|---|
한자 | 大洞慶州- |
영어공식명칭 | Gyeongju House with a Gabled (Masbae) Roof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향 |
이전 시기/일시 | 1976년 - 대동 경주맞배집 이건 |
---|---|
현 소재지 | 대동 경주맞배집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
원소재지 | 대동 경주맞배집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20-2 |
성격 | 전통건축 |
양식 | 맞배기와집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5칸 |
관리자 | 영남대학교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영남대학교 민속촌 내에 있는 조선 후기 민가.
[개설]
대동 경주맞배집(大洞慶州-)은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皇龍寺址)에 있던 허영식(許英植)의 주택이었다. 황룡사지 발굴로 인해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이건하였다.
[위치]
대동 경주맞배집은 원래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에 있었다. 황룡사지 발굴로 인해 1976년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이건하였다. 영남대학교 본관 뒤에 민속촌이 조성되어 있는데, 대동 경주맞배집은 민속촌 가장 안쪽 저지대 평지에 위치하며 가옥 남쪽에는 넓은 밭이 분포되어 있다.
[변천]
대동 경주맞배집은 황룡사지의 중문위치에 있던 가옥이다. 황룡사는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당시 창건한 사찰로 13세기 몽골 침입 때 불에 타 절터와 탑 터만 남았다. 세월이 흘러 폐허가 된 옛 황룡사의 터에는 민가가 들어서기 시작해서 1960년대 초에는 100여 호의 마을이 형성하였다. 구황동 마을은 분황사 남쪽 전답이 있는 들 가운데 평평한 사지 남쪽에 있는데, 마을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을의 건물구성은 모두 서민층의 평가옥으로 초가가 대부분이며 목조 와가가 몇 채 배치되어 있었다. 대동 경주맞배집은 목조 와가 중 한 채였다. 황룡사지 발굴로 인해 1976년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이건 복원하였다. 건물의 구조와 가구는 원형대로 복원하였지만, 부재가 부패하여 서까래, 좌우측 후면 우주(隅柱)와 대량(大樑)은 신재로 바꾸었다.
[형태]
대동 경주맞배집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 건물로 왼쪽부터 부엌 1칸, 안방 1칸, 대청 1칸, 건너방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一字形)이다. 부엌을 제외한 3칸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퇴칸은 집채의 원래 칸살 밖에 붙여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을 말한다. 부엌은 앞문과 뒷문이 모두 판문으로 되어 있어 출입할 수 있고 안방, 대청, 건너방은 모두 툇마루에서 직접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부엌은 전면가 측면을 각각 반 칸 정도 넓혀서 이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부엌은 전후면을 판벽으로 하고 전면 상부에는 환기를 위한 살창을 내었다. 부엌 전후면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 밖에서는 안으로 보이지 않게 하고 안에서는 외부인의 방문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안방과 건너방은 온돌로 하고 굴뚝은 뒷면에 기단을 통한 배연구를 설치하였다. 대청과 툇마루는 세로 방향에 짧은 널을 깔고 가로 방향에 긴 널을 깔아서 ‘井’ 자 모양으로 짠 우물마루로 하였고 툇마루는 대청보다 약간 낮게 설치하였다.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연등천정으로 되어 있다.
[현황]
2020년 현재 난방장치나 수도시설, 방화시설, 화장실, 전기시설 등이 되어 있지 않아 주거에는 적합하지 않고, 외진 곳에 있어 경비, 화재 대비 등 안전시설이 필요한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대동 경주맞배집은 대청의 전면에 굽널이 달린 세살문을 설치하여 마루방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대청을 마루방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는 경주, 포항, 영천 등지에서 보이는 지역적 특징 중 하나이다. 장식을 많이 하지 않은 소박한 일자형 주택으로 초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소규모의 서민적인 주거 공간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