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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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興寺- |
영어공식명칭 | Daeheungsa Temple Site |
이칭/별칭 | 대흥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고죽리 353전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박병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98년 - 대흥사 중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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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03년 - 대흥사 요사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06년 - 대흥사 중창 및 개칭 |
소재지 | 대흥사 터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고죽리 353전 |
성격 | 절터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고죽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개설]
대흥사(大興寺) 터는 통일 신라 시대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대흥사가 있던 터이다. 대흥사는 조선 시대 중창을 통해 사세를 확장하였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폐사 되었다.
[변천]
대흥사는 통일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창건 당시 사찰명은 ‘원통암(圓通庵)’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98년(숙종 24)에 수기(守機)가 암자를 중창하였고, 1703년(숙종 29)에 동서 요사(寮舍)를 건립하였다. 1706년(숙종 32)에 법당(法堂)과 종각(鐘閣)을 세우고 속암을 짓는 등 대중창을 하고 사찰명을 ‘대흥사’라고 개칭하였다. 당시 속암으로는 중암(中庵), 상암(上庵), 옥천암(玉泉庵), 망고암(望杲庵), 석송암(石松庵) 등이 있었다. 대흥사는 일제 강점기까지도 산내 암자를 거느리는 대사찰로 사세를 유지하였지만, 이후의 역사가 없어 대흥사의 폐사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1980년대 후반까지 대흥사 터에서 사찰과 관련된 초석, 기와편, 전돌 등이 발견되었다. 대흥사 터는 1990년경 신제지(新堤池) 준설 당시 흙으로 덮혔다.
[위치]
대흥사 터는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고죽리에 있는 금학산(金鶴山)[308.5m] 자락에 위치한다. 용성면행정복지센터에서 북쪽으로 약 3.1㎞ 거리에 신제지가 있고, 신제지에서 북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대흥사 터가 있다.
[현황]
대흥사 터는 흙으로 덮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대흥사 터에서 북동쪽으로 산길을 250m 정도 올라가면 산길 옆에 조선시대 부도(浮屠) 1기가 유존한다. 전형적인 조선 시대 종형(鐘形) 부도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보주(寶珠) 및 부도신(浮屠身)은 훼손이 심한 편이다. 부도좌(浮屠座)는 앙련(仰蓮)의 연화문이 양각되어 있고 전면에 대석(臺石)을 설치하여 제단(祭壇)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도가 발견된 곳이 대흥사의 산내 암자 가운데 중암 터라고 전해진다.
[의의와 평가]
대흥사 터는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원효대사의 고향인 옛 자인(慈仁) 지역 사찰의 존재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