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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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鐵堅 |
영어공식명칭 | Choi Cheolgyeon |
이칭/별칭 | 중경(重卿),난포(蘭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25년 - 최철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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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46년 - 최철견 사마시 합격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546년 - 난포고택 건립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최철견 전주성 및 수원성 전투 참전 |
몰년 시기/일시 | 1594년 - 최철견 사망 |
출생지 | 최철견 출생지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
거주|이주지 | 최철견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운용로 792 |
활동지 | 최철견 활동지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
활동지 | 최철견 활동지 - 전라북도 전주시 |
묘소 | 최철견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송림리 |
성격 | 문신|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전라도사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에 정착한 문신.
[개설]
최철견(崔鐵堅)[1525~1594]은 전라도사(全羅都事) 재임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으로 활약하였으며, 귀향해서는 손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가계]
최철견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중경(重卿), 호는 난포(蘭圃)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감사를 역임하였던 최응(崔凝)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경상도사(慶尙都事)를 지낸 최강숙(崔强淑), 할아버지는 선덕랑(宣德郎) 최효남(崔孝男)이다.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生員) 최계생(崔季生)이며, 어머니는 군수 정욱(鄭旭)의 딸 오천 정씨(烏川鄭氏)이다. 최철견의 부인은 진사 최순동(崔順潼)의 딸 흥해 최씨(興海崔氏)이다. 최순동은 최팔개·최팔원 형제의 증조할아버지이다. 아들은 청주교수 최침(崔沉), 손자는 선무원종공신이자 첨지중추부사인 최인수(崔仁壽)이며, 증손자는 포도대장(捕盜大將)을 지낸 최준립(崔竣立)이다.
[활동 사항]
최철견은 영천군 출신이었지만, 20대 때 처가가 있는 자인현(慈仁縣)으로 이주하여 곡란리에 난포고택(蘭圃故宅)[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을 짓고 정착하였다.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다. 1592년(선조 25) 전라도사로 재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으로 활약하였다. 전주성을 지킨 공으로 통정(通政)에 가자되었다. 특히 오산(烏山) 독산성(禿山城) 전투에서 권율(權慄)을 도와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후 낙향하여 고령에도 불구하고 손자 최인수(崔仁壽), 증손자 최준립(崔竣立)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자인 지역에 침입해 오는 왜적을 방어하였다. 또한 영천의 권응수(權應銖)의 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경주 아화(阿火)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다.
[저술 및 작품]
최철견의 행적을 엮은 『난포공실기(蘭圃公實記)』가 전한다.
[묘소]
최철견의 묘소는 자인현 동쪽 송림[현재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송림리] 비봉산(飛鳳山) 묘좌(卯坐)에 있다.
[상훈과 추모]
최철견의 행장은 사헌부 장령 최경식(崔慶湜)이 짓고, 묘갈명은 자인현감을 지낸 청주(菁州) 류운우(柳雲羽)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