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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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炳澔 |
영어공식명칭 | Kwon Byeongh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86년 - 권병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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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1월 - 권병호 용강사에서 일본 순사 사살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4월 - 권병호 울산 두서면에서 총기 확보 |
출생지 | 권병호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신석리[옛 경상북도 경산군 남면 신석동] |
거주|이주지 | 권병호 망명지 - 중국 만주 |
활동지 | 권병호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
활동지 | 권병호 활동지 - 울산광역시 |
활동지 | 권병호 활동지 - 전라남도 장성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개설]
권병호(權炳湖)[1886-?]는 1908년 1월에서 4월 사이 독립된 소규모 의병 부대를 조직하여 경산·청도·장성·울산 등지에서 총기 및 군자금 모집과 일본 순사 처단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권병호는 1886년경 경상북도 경산군 남면(南面) 신석동(申石洞)[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신석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활동 사항]
권병호는 1907년 7월 고종의 강제퇴위와 같은 해 8월의 군대 강제해산을 계기로 청도 출신의 소모장(召募將) 구성립(具成立), 밀양 단장 출신의 종사(從事) 유진삼(兪進三)과 함께 경산·청도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구성립과 유진삼은 청도 일원의 윤만파(尹萬波) 의진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당시 청도 지역은 최세윤(崔世允)의 산남의진(山南義陣) 본진과 지대의 활동지였으나, 권병호는 구성립·유진삼과 함께 독자적으로 의병 부대를 이끌었다. 권병호는 1908년 1월 일초장(一哨長) 손석태(孫石泰)와 전라남도 장성의 용강사(龍江寺)에서 의병 80여 명을 이끌고 일본 순사 4명을 사살하였다. 그 후 경상남도 거창으로 옮겼으나 일본군의 추격으로 흩어졌다가, 청도 운문사(雲門寺)에 잠복하였다. 그리고 1908년 4월 초 청도 동이위면(東二位面)[현 운문면]에서 사방으로 격문을 보내 재기를 준비하였다. 4월 8일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울산 두서면[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에서 총기 7정을 확보한 후, 이를 경주 산내면 산저리(山底里)에 숨겼다. 그런 가운데 4월 9일 소모장 구성립이 청도 운문면 공암동(孔巖洞)의 동장에게 군자금 500냥을 요구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것이 경산·자인(慈仁)·청도 지역을 정찰하던 대구경찰서 소속 제1 변장대(變裝隊)에게 발각되어 숨긴 무기는 압수당하였고, 소모장 구성립과 종사 유진삼 등이 체포되었다. 권병호는 이때 피신에 성공하여 자취를 감추었다가, 국권상실 후 만주 방면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상훈과 추모]
권병호는 아직 미서훈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