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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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雙磎寺一柱門 |
영어의미역 | Iljumun Gate of Ssanggye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승훈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2월 16일 - 하동 쌍계사 일주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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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하동 쌍계사 일주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건립 시기/일시 | 1641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7년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성격 | 불전|일주문 |
양식 | 다포식|겹처마 팔작지붕 |
소유자 | 쌍계사 |
관리자 | 쌍계사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쌍계사의 일주문.
[개설]
쌍계사(雙磎寺)는 통일 신라 시대인 722년(성덕왕 21) 대비화상(大悲和尙)과 삼법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사찰로, 처음에는 옥천사라 불렀다. 뒤에 정강왕(定康王)[?~887]이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두 개의 계곡이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로 고쳐 불렀다.
[위치]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번지 쌍계사 경내로 진입하는 입구에 위치한다.
[변천]
하동 쌍계사 일주문(雙磎寺一柱門)은 신라 때인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쌍계사를 중창하였을 때 처음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의 사례는 알 수 없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641년(인조 19) 벽암선사(碧巖禪師)[1574~1659]가 쌍계사를 중창할 때 새로 중건되었다. 이후의 기록은 잘 알 수 없으나 용담선사(龍潭禪師)가 단청 불사를 이루었으며, 1977년 고산선사에 의해 수리되었다.
[형태]
건축 양식은 다포식(多包式)으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지붕은 옆면이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공포는 앞면에 3구, 옆면에 2구를 배치하여 처마를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기둥 앞뒤에는 보조 기둥을 두어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게 하였는데, 보조 기둥의 머리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삼신산쌍계사(三神山雙磎寺)’와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이라는 2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근대 서화가로 이름을 떨친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8~1933]이 쓴 것이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쌍계사 일주문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쌍계사이다.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하동 쌍계사 일주문은 조선 시대 건축사에 있어 화려한 다포계 양식을 잘 보여 주는 것으로 의미가 크다.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양쪽에 기둥 하나씩을 세워 만들었다 하여 일주문(一柱門)이라 한다. 일주문은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중생계의 차안과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을 구분 짓는 곳인데, 이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해탈의 즐거움을 잘 나타내고자 한 의도가 들어 있다고 보아 그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