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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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挺岳父子旌閭 |
이칭/별칭 | 증조봉대부 동몽교관 양공지려(贈朝奉大夫童蒙敎官梁公之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 대정마을 47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연가 |
건립 시기/일시 | 18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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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 472 |
성격 | 정려비 |
양식 | 겹처마 맞배 기와지붕 |
관련 인물 | 양정악(梁挺岳)|양태원(梁泰源)|주신(柱臣)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30㎝[높이]|15㎝[두께] |
소유자 | 양정악 후손 |
관리자 | 양정악 후손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 대정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 정려비.
[건립 경위]
조선 철종 때 하동군 옥종면 병천에서 거주하던 선비 양정악(梁挺岳)은 효행이 높고 학문이 깊어 명망이 널리 알려졌다. 1855년(철종 6) 조정에서 양정악에게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고, 1867년(고종 4) 정려를 세울 것을 명하였다. 양정악의 아들 양태원(梁泰源) 역시 효행이 높아 손자인 진사 양주신(梁柱臣)이 양정악 부자의 행적을 새겨 1872년(고종 9) 양정악 부자 정려(梁挺岳父子旌閭)를 세웠다.
[형태]
기와를 얹은 맞배지붕의 1칸 규모의 정려 안에 2개의 비석이 정면을 보고 나란히 서 있다. 처마에는 ‘효자 증조봉대부 동몽교관 양정악지문(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梁挺岳之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비각은 기단석 위에 초석을 놓아 둥근 기둥을 세웠고, 기둥의 상부는 이익공(二翼工)으로 꾸몄다. 상부 구조는 3량가(三樑架)의 가구(架構)를 결구(結構)하고, 겹처마에 맞배 기와지붕이다. 박공(牔栱)[지붕의 측면에 생기는 삼각형 벽] 양측 면은 풍판(風板)[박공 아래에 바람과 비를 막으려고 길이로 잇대는 널빤지]을 설치하고 내·외부는 모루단청을 하였다. 비석의 규모는 각각 가로 45㎝, 두께 15㎝, 높이 130㎝의 화강암이다.
[금석문]
양정악의 비에는 ‘증조봉대부 동몽교관 양공지비(贈朝奉大夫童蒙敎官梁公之碑)’라고 새겨져 있고, 양정악의 아들 양태원의 비에는 ‘증통훈대부 사헌부감찰 양공지비(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梁公之碑)’라고 새겨 그 효학(孝學)에 대해 알리고 있다. 천성이 효자였던 양정악과 양태원 부자의 효행을 영남 선비들이 말하였기에 후세에 이를 알리고자 기록한다는 내용의 비문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1859년(철종 10) 기정진(奇正鎭)이 지었다.
[현황]
2011년 현재 양정악 부자 정려는 양정악 후손이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정려는 고색창연한 모습이며,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