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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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載基 |
영어음역 | Yi Jaegi |
이칭/별칭 | 후약(厚若),입암(笠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269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현덕 |
출생 시기/일시 | 1874년 5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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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몰년 시기/일시 | 1952년 2월 10일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269 |
묘소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재기(李載基)는 1874년(고종 11) 5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이재기는 청년 시절 일본을 다녀온 후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고 스스로 심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 같은 동리의 문공학(文孔學)·문영빈(文永彬) 등과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3월 21일 하동군 횡천면 여의리 장날에 장터 군중을 향해 연설하고 태극기를 배부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 이후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몸을 숨겼던 이재기는 다시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여 4월 3일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서 2차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1천여 명의 군중이 시위의 여세를 몰아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자, 일본 경찰이 발포하여 수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재기는 하동경찰서에 연행되어 가혹한 고문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였다.
5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 회부되어 보안법 위반이란 명목으로 태형 90대를 선고받았다. 이후 이재기는 줄곧 흰색 모자를 쓰고 다니다 1952년 2월 10일 일생을 마쳤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신정마을에 있으나 표지석은 없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