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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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雲龍 |
영어음역 | Baek Unry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151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판석 |
출생 시기/일시 | 1925년 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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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3년 11월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1월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50년 |
출생지 | 평안북도 신의주시 미륵동 151 |
거주|이주지 | 하동군 화개면 탑리 151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으로 이주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백운룡(白雲龍)은 1925년 2월 28일 평안북도 신의주 신의주시 미륵동 151번지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제의 징병령이 강화될 즈음 만주로 피신했다가 같은 해 11월 산동성 청도 지구의 적지구공작대(敵地區工作隊)에 입대하여 적지구 특파 공작대원으로 광복군의 징모(徵募) 공작을 전개하였다. 1944년 1월 광복군 소속인 윤창호(尹昌浩)와 일본군 점령 지역의 일본군 동태 파악 및 군자금 조달 등의 지하 활동을 하면서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이후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적피점(敵被占) 지구 공작원으로 임명되어 투쟁을 계속했고, 1943년 3월 광복군 제3지대가 부양군으로 귀대할 때 문성근(文誠根)·박성관(朴成官)·김응주(金應柱)·이헌일(李憲一) 등을 안내하여 무사히 집결시켰다. 다시 중국 산동성으로 옮겨간 백운룡은 해방이 될 때까지 광복군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계속했다.
광복 이후 귀국한 백운룡은 서울과 신의주를 왕래하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하동군 화개면 탑리 부근으로 피난하였다. 휴전 이후 화개면사무소가 불에 타 화개면민들이 호적을 만들 때 동참하여 하동군민이 되었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