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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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過洞庭湖-崔淑民- |
영어의미역 | Passing through the Dongjeongho Pond |
이칭/별칭 | 「동정호를 지나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호진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3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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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05년 |
배경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
성격 | 한시|오언 율시|유산시 |
작가 | 최숙민(崔琡民)[1837~1905] |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최숙민이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동정호를 바라보며 지은 한시.
[개설]
「과동정호(過洞庭湖)」는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문집 『계남집(溪南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최숙민이 하동 지역을 여행하면서 동정호 앞의 악양 들판, 그 곁의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을 보며 청운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저기 유람만 다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한시이다. 동정호는 본래 중국 후난 성[湖南省]에 있는 중국 최대의 담수호이지만, 여기에서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호수를 말한다.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592~667]이 중국의 동정호와 흡사하다 하여 동정호라 명명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인근에 은거하여 살았던 조선 초기 유학자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함께 지리산[1,915m]을 유람한 후 악양으로 내려가며 한시 한 수를 읊었는데, 이후 이에 차운한 한시가 많이 전하며, 더불어 악양의 동정호는 조선조 유학자들의 지리산 유람에 중요 코스로 자리하였다. 동정호는 그동안 늪지대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현재 하동군의 재정비 노력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구성]
오언 율시의 구성법에 맞게 전개한 한시이다. 수련에서는 동정호 주변에 펼쳐져 있는 들과 산, 그리고 하동 고소성의 모습을 읊었다. 함련에서는 동정호로 흘러드는 상수(湘水)와 대낮같이 훤한 동정호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경련에서는 청운의 꿈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자신의 생각을 노래하였고, 미련에서는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신세를 그려 내었다.
[내용]
대야개숭악(大野開崇嶽)[높은 산 앞에 너른 들이 펼쳐 있고]
망망수작성(茫茫水作城)[고소성 가에는 아득히 강이 흐른다]
담연상수원(淡烟湘峀遠)[옅게 놀 낀 상수 멧부리 멀기만 하고]
백일동정명(白日洞庭明)[밝은 대낮에 동정호는 맑기만 하다]
비직롱운사(匪直隴雲思)[청운의 높은 뜻은 이루지 못할진대]
조종사조맹(早從沙鳥盟)[고향으로 돌아가자던 맹세를 따르리]
의공천지활(倚筇天地闊)[지팡이에 의지하여 너른 천지 떠도니]
무사일서생(無事一書生)[할 일 없는 서생에 지나지 않는도다]
이를 풀이하면, 제1구에서 ‘큰 들이 높은 산을 열었다’는 것은 높은 산 앞에 큰 들이 있는 악양 들판의 형세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제2구에서 ‘아득히 흐르는 물이 성을 지었다’는 것은 하동 고소성 가에 강물이 흐르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5구에서 ‘언덕 위에 떠가는 구름의 생각[隴雲思]’은 청운의 뜻을 말한 것이며, 제6구의 ‘물가 새의 맹세[沙鳥盟]’라는 것은 갈매기와 맹세한 것을 말한다. 옛날 시에서는 홍진을 벗어나 빨리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갈매기에 맹세하는 일이 많았다.
[특징]
특히 수련에서는 일상의 언어를 뒤집은 시적 표현을 사용하였고, 경련에서는 압축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시적 긴장을 꾀하였다.
[의의와 평가]
최숙민은 「고소성(姑蘇城)」이란 시에서 하동 고소성에 올라 역사를 회고하며 나라의 현실을 걱정하였던 것과 달리, 「과동정호」에서는 너른 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았다. 특히 동정호에서 바라보이는 들판과 산, 그리고 강의 모습을 눈에 보이는 듯 잘 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