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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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安湖里·石湖里遺跡 |
영어공식명칭 | Haenam Ahnhori·Seokhori Yuj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안호리|석호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재언 |
건립 시기/일시 | 3~4세기 -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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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7년 2월 7일~5월 31일 -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 대한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 |
소재지 |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안호리|석호리 |
성격 | 고분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안호리·석호리에 있는 3~4세기 고분.
[개설]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海南安湖里·石湖里遺跡)은 해남군 화산면 안호리·석호리에 있다. 3~4세기 마한 시기에 조성된 고분 50여 기가 발견되었으며 수많은 유물이 수습되었다.
[위치]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은 해남군 화산면 안호리 514-3번지 일원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은 해남군 화산~평호 도로 개설 공사에 앞서 문화재조사기관인 대한문화재연구원이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기간은 2017년 2월 7일부터 5월 31일까지로 4개월간이었다. 조사 결과 해남군 화산면 안호리·석호리 야산 기슭에서 3~4세기 마한 시기에 조성된 고분 50여 기가 확인되었다.
[형태]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은 2017년 발굴 조사 결과 마한 시기에 조성된 5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매장 시설은 100여 기 정도의 목관묘, 직장묘[토광묘], 옹관묘[독무덤] 등이 100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분의 규모는 약 4.8m부터 최대 20.1m 정도이다. 봉분 주위로 사다리꼴의 도랑을 두른 마한 전통의 무덤 양식으로, 중앙에는 목관묘 혹은 옹관묘를 안치하고 외곽에는 옹관묘와 목관묘, 직장묘 등을 추가로 매장하였다. 고분은 대부분 도랑을 공유하면서 맞물리게 축조하고 있어 같은 집단의 공동 묘역들이 군데군데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에서는 다수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유물 중 대표적인 것을 살피면 목 짧은 항아리[단경호(短頸壺)], 겹아가리 항아리[이중구연호(二重口緣壺)], 양이호(兩耳壺), 조형토기(鳥形土器) 등의 토기류와 함께 환두도, 철도끼[철부(鐵斧)], 철정(鐵鋌), 철도자 등의 철기류와 목걸이에 사용한 구슬류 등 200여 점 이상의 부장 유물 등이 있다. 부장 유물을 검토한 결과 고분이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후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황]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에 대한 대한문화재연구원의 보고서는 출시되지 않아 아직 정확한 유적의 규모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2018년 7월 해남군 주최로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해남반도 마한 고대사회 재조명」이라는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을 바탕으로 해남 백포만 일대가 연안 항로의 기항지였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의의와 평가]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의 출토 유물은 해남에서 같은 시기에 조성된 해남 부길리 옹관묘, 분토리 고분군, 신금 유적 자료와 비슷한 양식을 띠고 있다. 해남 안호리·석호리 유적의 주인공들은 백포만 일대에서 철기를 매개로 대외 교류에 참여하였던 마한 해상 세력으로 판단된다. 특히 『일본서기』에 기록된 침미다례(枕彌多禮)와 연관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