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057
한자 演劇
영어공식명칭 Theater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윤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보이는 종합예술.

[개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연극은 1952년 미암극단이 창단되면서 본격화되었고 1991년 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가 결성되어 안정된 여건 속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해남의 연극]

해남 연극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남 출신인 이기홍, 손귀만 등이 연극계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명 연출가인 이기홍은 ‘조선악극단’ 등 역량 있는 극단에서 활동하였으며, 극작가 유치진에게서 세계적인 조명가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손귀만은 장치 연출가로, ‘황금좌’, ‘아랑’ 등의 극단에서 활동하였다. 해남 지역 내에서 초창기에 이뤄진 연극 활동은 해남청년회관에서 공연된 신파극 위주였다. 백일만, 손귀만, 유병환, 하동호 등이 스태프와 캐스팅을 맡아 계절에 따라 막을 올렸다. 그러한 연극적 성과들이 모여 나중에 극단 ‘예천좌(藝泉座)’가 결성되었다. 예천좌는 지금의 홍교 다리 근처에 있던 ‘해남청년회관’을 거점으로 활동했으며, 전라남도의 강진·완도 등 가까운 군 지역을 돌아다니며 순회공연도 하였다.

해남청년회관에서 시작된 연극은 이후 문을 연 해남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뒤부터 신파조를 벗어나 현대연극이 시도되었다. 특히 1950년대에 서울에서 귀향한 김봉호가 가세하여 오늘날의 미암(眉岩)극단의 전신 격인 ‘해남연극동인회’가 결성되었다. 그리하여 김봉호가 주로 극본과 연출을 맡고, 임영종·김왕열·강선희 등 신진 배우들이 등장하여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1952년 전라남도 최초 극단인 ‘미암’이 해남에서 창단되었다. 미암극단 창단 후 올린 첫 연극이 「홍도야 우지마라」였고 연출은 노우춘이 맡았다.

그 후 미암극단은 매년 새로운 연극을 올렸는데, 「봉선화」, 「울려고 내가 왔던가」, 「어머니」 등 6·25전쟁 이후의 시대를 반영한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이 시기에 활동한 연극인으로는 김남용·이홍주·변복애·백영훈 등이 있으며, 김경수·박삼주·김필승 등 음악인이 가세하여 해남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밖에도 해남에서 활동한 연극인으로는 민경호·황연명·김연태·노우춘·박승남·박흥수·김정복·유병환·서춘자·김재봉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세상을 떴지만, 생전에는 미암극단을 중심으로 해남의 연극을 발전시켜 왔다. 또한 김희권과 김정태는 ‘소년클럽’ 등 기독교 교회 계통 극단을 이끌며 여러 차례 공연을 올렸다.

1991년에는 군 단위 최초로 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가 결성되면서 미암극단은 한층 안정된 여건에서 해남의 연극을 주도하게 되었다. 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의 초대 지부장을 맡은 박승남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미암극단 운영에 헌신하였다. 그리하여 2005년 9월에는 ‘제15회 전남청소년연극제’를 해남에 유치하였고, 또 2009년에는 제27회 전남연극제를 유치하였는데 해남 ‘미암극단’의 「레드색소폰」이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어 전국연극제에 참가하게 되면서 해남 연극의 수준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9년 박승남 지부장이 갑자기 사망한 후 잠시 공백이 있었으나 고유경이 지부장을 맡으면서 전라남도문화관광재단이 지원하는 ‘공연장상주단체’ 사업에 선정되어 해마다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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