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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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 最初-醬海南東國醬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시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경아 |
[정의]
전라남도 해남에서 시어머니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아 한식 된장의 명인이 된 한안자의 동국장 이야기.
[장의 기원과 유래]
우리나라 장(醬)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는 뜻으로 선장양(善醬釀)이라고 하였고, 고구려 안악3호분 고분벽화 등에는 장을 보관한 듯한 옹기독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데에서 유래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시대를 거쳐 오면서 장을 음식에 사용하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산림경제』에 전래의 전통 음식을 다루는 치선(治膳) 편을 앞세우고 그중에서 장 만드는 조장법(造醬法)을 한데 묶는 등 처음으로 조리 과학적 편성 방법을 선보이고 있다. 조장법 편에서는 생황장(生黃醬)을 비롯하여 숙황장(熟黃醬), 면장(麵醬), 대맥장(大麥醬), 유인장(楡仁醬) 등 새로운 조장법과 함께 동인조장법(東人造醬法)을 설명하고 있다. 동인조장법은 당시 조선에서 전하여 오는 장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을 소개한 것이다. “대두를 깨끗하게 장만하여 하룻밤 물에 담갔다가 건져 내어 노랗게 될 때까지 삶는다. 삶은 콩을 손으로 짓이겨 주먹 크기의 덩어리로 만들어 사이사이에 짚을 넣고 짚둥구미[藁篅]에 담아 더운 데 놓아두면 누런 곰팡이[黃衣]가 핀다. 이때 강한 햇볕에 말려서 도로 따뜻한 데에 두어 저절로 마르게 한다. 이것이 말장(末醬)이다.”라고 하였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장 만들기에 앞서 소금, 장 항아리, 용수[싸리나 대오리로 만들어 술이나 장을 거르는 데 쓰는 둥글고 긴 통] 등 처리 방법을 제시하면서 다양한 장류 제조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2007년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대섬 인근 마도 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목선인 마도1호선에서 나온 목간에 말장 관련 기록이 나왔다. 목간에 의하면, 마도1호선은 1207년(고려 희종 3) 10월부터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 포구에서 물건을 실었다. 물건은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나주·장흥 일대에서 거둬들인 것이었다. 1208년(고려 희종 4) 2월에 배는 여수를 떠나 송도로 향하였다. 목간에는 송도로 보냈던 물건의 내용이 적혀 있는데, 그중에 말장이 있었다. 이로 미루어 메주는 매우 오래전부터 중요한 진상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한안자의 노력]
1940년생인 한안자는 청주한씨(淸州韓氏)로, 조선 왕후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사직촌 한씨 가문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예절과 법도를 배웠다. 한안자의 집안은 조선 인수대비의 후손으로 청주한씨 가문 중에서도 지금의 광주광역시 사직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여 특별히 사직촌 한씨라 불렸다. 어려서부터 한씨 집안 고유의 전통 장 담그는 모습과 기품 있는 전통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어머니에게서 자연스럽게 보아 왔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사람이 의식주 부족으로 고통을 겪는 것을 보았고, 집을 잃고 굶어 죽어 가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걱정 없이 먹고 돌봄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전쟁 이후 한안자는 어깨 너머로만 배웠던 전통 음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친정 조모인 정영선과 어머니 오금례에게서 청주한씨 명가의 장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고, 광주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조선대학교 가정교육과에 진학하게 된다. 1960년 3월 대학을 졸업하고, 곡성중앙국민학교, 양산국민학교, 송정여자중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65년 스물여섯이 되던 해에 밀양박씨 공간공파의 31대손인 장남 박석완과 혼인하게 된다. 이미 집안 간의 혼인이 약속되어 있어 신랑 얼굴도 보지 않고 광주에서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시집오면서 해남군 황산면 시등리에서 전통 식품 명인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한안자는 결혼 후 황산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이어 가면서 박씨 가문의 일원이 되어 다시 가풍을 익혔다. 원래 박씨 가문은 해남 황산에서 천석꾼 집안으로 이름나 있었으나 차츰 가세가 기울었고 이에 한안자는 다른 일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교직 생활을 접기로 마음먹으면서 시등어린이집을 설립하였다. 황산면에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없다는 점이 무척 안타까웠고 한국전쟁 당시에 보았던 굶주린 아이들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통 식품 만드는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예전보다 살림이야 줄었지만 그래도 방앗간과 얼마간의 땅은 있으니, 그곳에서 나는 우리 농작물로 전통 음식을 만들어 보자는 심산이었다. 한안자는 시할머니 김복민과 시어머니 윤락순에게 전통 장의 비법을 전수받게 되면서 결심을 굳혔다.
시어머니인 윤락순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9대손으로, 해남윤씨(海南尹氏) 사대부가의 장을 만들고 발효해 숙성하고 저장하는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특히 시어머니 윤락순에게서 우리나라 최초의 된장이라 할 수 있는 동국장의 전통 비법을 전수받게 되었고, 한안자는 이를 대단한 행운으로 여겼다. 청주한씨 집안과 해남윤씨 집안의 전통 음식과 장류 제조 비법까지 양가의 비법을 모두 전수받은 한안자는 이 일을 계기로 향후 50년간 전통 음식 제조의 길을 걷게 된다.
한안자는 친정과 시댁에서 배운 전통 장 만드는 비법을 응용해 조선시대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진 전통의 살아 있는 장, 생장(生醬) 맛을 되살려 냈다. 이것이 ‘동국장’이다. 사직촌 한씨와 해남윤씨의 장이 만나 전통 방식의 장을 재현해 낸 것이다. 동국장은 고조선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장으로, 알이 굵고 고른 품질의 대두 재료로 발효시킨 메주를 3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을 사용해 맥반석 항아리에서 숙성한 후, 용수를 넣어 간장과 된장을 걸러 내는 가장 전통적인 제조 방법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일반 된장과 다른 점은 메주를 발효시켜 끓이거나 간장을 따로 내지 않은 채 그대로 먹는 생장이라는 점이다. 동국장만은 유독 발효균이 그대로 살아있는, 말하자면 생된장·생간장인 셈이다.
[동국장을 만드는 과정]
동국장을 만들려면 먼저 메주를 빚어야 한다. 메주를 만드는 방법은 정이월 안에 콩을 깨끗이 씻어 돌을 골라내고, 삶을 때 물이 넘치려고 하면 물을 조금씩 떨어뜨려 가라앉힌다. 끓이는 동안 제일 위에 있는 콩을 꺼내어 손으로 눌러 껍질이 잘 벗겨지는지 보고 덜 익은 것 같으면 다시 무르게 삶아야 한다. 잘 삶은 콩을 절구에 넣고 잘 찧어서 주먹 크기 또는 벽돌 크기로 만든다. 보통 테니스공 크기로 일반 메주보다 작게 만드는데, 덩어리로 단단히 빚은 메주는 햇볕에 온종일 말리되, 오전에 한 면을 말리고 오후에 다른 한 면을 말리면 표면이 거의 마르게 된다. 이것을 섬에 넣고 아가리를 풀로 엮어 놓는데, 섬에는 짚을 15㎝가량 깔아 서로 겹치지 않게 한 벌만 놓고 다시 그 위에 볏짚을 두껍게 덮어 둔다. 노란 곰팡이가 일고 속이 잘 뜨도록 짚동구리에 넣었다가 맷방석에 넣는 것을 반복하며 발효시킨다.
7~15일이 지나 띄워져서 흰색이 돌고 퀴퀴한 냄새가 나면 말장이 된 것이니 꺼낸다. 반씩 쪼개어 쪼개진 면이 볕을 보도록 온종일 쪼이고 다시 섬에 담아 흰색으로 변하기를 기다린다. 만일 단단해지지 않으면 또 서너 조각으로 쪼개서 하루쯤 햇볕에 쪼여 다시 앞에 한 것처럼 섬에 담아 묻어 두면,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띄워지고 마른다. 곰팡이를 털고 끓는 소금물에 담가 장이 익으면 용수를 넣어 장물은 간장으로, 걸쭉한 건더기는 된장으로 사용한다.
동국장은 끓이지 않고 장, 된장을 따로 분리하지 않은 장이라 유익한 여러 미생물이 많으며 된장과 간장 맛이 살아 있어 된장과 간장의 장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일반 된장보다 향이 달콤해, 예전에는 조미료를 대신해 음식에 맛을 더해 줬다. 또한 동국장은 사용량만큼 떠서 물과 희석하여 쓰는데 희석 정도에 따라 나물을 무치거나 국, 찌개, 양념장을 만들 수 있고, 전, 두부, 쌈장, 비빔밥, 된장용, 소스용 등 만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동국장 만드는 방법이 일반 된장·간장과 담그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안자가 말하는 동국장의 비법은 반드시 국산 콩[대두]을 쓰고, 삶을 때 물 조절과 불 조절을 잘해야 된다는 것이다. 물은 딱 한 번, 콩과 물의 비율을 1:2로 해서 장작불로 삶아야 제맛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동글납작한 모양과 작은 벽돌 모양으로 성형해 볏짚이 아닌 통대나무 선반 위에 얹어서 말리는 것도 그만의 독특한 증자(蒸煮) 방법이다. 소금의 선택도 중요하다. 한안자는 소금만큼은 해남 지역인 고천암 해안가 염전에서 생산하는 3년 된 천일염을 쓴다. 그렇게 해서 잘 뜬 메줏가루와 소금물을 섞어 오지항아리에서 60~90일간 은근한 온도[18℃ 정도]에서 숙성시킨 것이 생된장·생간장인 동국장이다. 잘 발효된 동국장을 보면, 흡사 진한 커피색에 메주 덩어리가 뭉글뭉글 흩어져 있는데, 흡사 이른바 ‘왜간장’을 섞은 양념간장 같은 독특한 맛이 난다. 발효 과정에서 특별한 첨가물을 넣는 게 아니라 콩 삶기, 물 배합, 메주 숙성, 소금 선택, 적정 온도에서의 발효, 이러한 모든 것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동국장이 된다.
[식품 명인, 장의 세계화를 꿈꾸다]
해남군 황산면 시등리에 들어서면 마을 한쪽에 약 1만 ㎡ 부지에 약 1,000㎡ 넓이의 귀빈식품이 있다. 서울 판매처까지 합치면 직원이 70여 명에 달한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재료를 손질해 담고 포장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공장 자동화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 손으로 일일이 해야 하기에 직원 수가 적지 않다. 회사 부지 내 장독대에는 400여 개의 항아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한안자는 그동안 자신이 보고 배우고 느꼈던 장독대의 여러 비밀을 우리나라를 위해 표준화하고, 많은 사람이 만들어 먹고 건강할 수 있게 표준 레시피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콩, 좋은 물, 좋은 소금이 있다 하더라도 누가 어떤 방법으로 어떤 정성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현저하게 드러난다. 정성이란, 원료의 선택, 혼합, 발효, 숙성, 공기와 햇볕의 이용, 항아리의 모양과 크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장은 담그고 나서 열흘에 한 번씩 장독 입구를 닦아 주고 상태를 보아 뚜껑을 열어 햇빛으로 소독해야 하며, 곰팡이가 피는 장은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한다. 정성을 다하여 맛있게 숙성된 장의 향기는 우리 마음의 향기와 같다, 이것이 한안자가 강조하는 ‘느린 숨, 깊은 발효’이다.
이제 50년 가까이 장을 빚다 보니 이제는 “눈으로 장맛을 본다.”라고 할 정도로 장인의 면모를 보이는 한안자는 이제 전통의 맥을 잇는 것을 넘어 오늘날의 장을 만드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아, 2006년 전라남도의 도지사 품질 인증을 받았고 2010년에는 품질경영시스템 ISO 9001 인증까지 획득하였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한안자는 동국장으로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40호로 지정되었고, 특히 지난 2017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에는 한미정상회담 만찬 식탁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호하는 생선 요리인 가자미구이와 함께 한안자의 ‘동국장 맑은국’이 반찬으로 오르기도 하였다. 전통 음식을 통해 과거와 오늘을, 우리와 세계를 이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그런 역할이야말로 홍수처럼 밀려드는 중국산 김치, 세계 여러 나라의 각종 소스와 향신료가 쏟아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의 전통 장류를 지키고 발전시켜 국민과 후손들의 건강을 책임질 뿐 아니라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싶다는 한안자의 희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