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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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安高麗洞遺蹟址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ic Site in Goryeodong, Ham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재현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형성된 마을.
[개설]
함안 고려동 유적지(咸安高麗洞遺蹟址)는 성균관 진사(進士)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고려동을 택하여 거처를 정한 뒤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위치]
함안 고려동 유적지는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다.
[변천]
이오는 끝까지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은거지 주변에 담을 쌓아 밖은 조선의 영토라 할지라도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를 세웠다. 여기서 ‘담안’ 또는 ‘장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또한 담 안에 주거를 만들고 우물을 파 논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할 수 있는 터를 만들었다. 이오는 아들에게도 조선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가 죽은 뒤라도 신주를 고려동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이오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고려동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30가구의 후손들이 재령 이씨(載寧李氏) 동족 마을을 형성하며 살고 있다.
[현황]
현재 함안 고려동 유적지에는 고려동학비(高麗洞壑碑), 고려동 담장, 고려 종택(高麗宗宅), 자미단(紫薇壇), 고려전(高麗田) 9만 9000㎡,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井) 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6·25 전쟁 때 소실되어 이후 재건된 것이다. 현재 지은 지 약 200년 된 호상공의 생가로 알려진 주택이 유일하게 동란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자미정을 포함한 종가는 비교적 정교하게 재건되었으나 조선 초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1983년 8월 2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함안 고려동 유적지는 조선 초부터 600여 년 동안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지키며 살아온 곳으로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지역민의 높은 절개와 의리를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