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471
한자 趙純將軍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586-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398년 - 조순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7월 20일연표보기 - 조순 장군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조순 장군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조순 장군비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586-1지도보기
성격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조순 장군의 비.

[개설]

조순(趙純)[?~1398]은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같이 위화도까지 출전하였다가 이성계가 회군(回軍)하자 "번국(藩國)으로서 상국(上國)을 범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하나 왕명(王命)을 받들지 않고 급히 회군함은 더욱 불가하다"라며 반대한 후 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검암(儉巖)에 은신(隱身)하였다. 이성계가 정권을 잡은 뒤 조순의 충성심을 생각하여 전국에 수배한 끝에 검암에 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수차례 복직(復職)을 권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다고 한다.

[건립 경위]

조순 장군비(趙純將軍碑)는 왕명을 거역하면 목을 베겠다는 엄포에도 굽히지 않은 지조(志操)를 찬양하여 건립한 비로, 집 앞에 세운 일종의 하마비(下馬碑)이다.

[위치]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586-1번지에 있는 완천당 박 선생 유허비각(浣川堂朴先生遺墟砒閣) 내에 보존되어 있다.

[형태]

납작한 받침돌 위에 비를 세운 모습으로, 비의 윗변은 둥글게 다듬어 위패처럼 만들었다. 이 같은 형태의 간소한 비석은 조선 시대에 많이 제작되었는데,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위패처럼 만든 이유는 위패가 성스러움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금석문]

비명(碑名)은 '좌 중군 동지 조공 순 유허비(佐中軍同知趙公純遺墟碑)'라 하였다. 비명 오른편에 ‘인중군 이백이(人中軍而伯夷)’, 왼편에 ‘지검암 이수양(地儉岩而首陽)’이라 하였다. 비의 뒷면에는 조순의 행장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조순 장군비는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순 장군비는 왕명을 거역하면 목을 베겠다는 엄포에도 굽히지 않은 조순의 지조를 찬양하여 행적에 대한 당시의 기록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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