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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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齊仁 |
영어공식명칭 | Bak Jein |
이칭/별칭 | 중사(仲思),황암(篁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구경아 |
[정의]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사(仲思), 호는 황암(篁巖).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화(朴精華)이고, 할아버지는 박유(朴㽔)이다. 아버지는 박희삼(朴希參)이며, 어머니는 강신범(姜信範)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침(李琛)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이일민(李逸民)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아들은 박율(朴瑮)이다.
[활동 사항]
박제인(朴齊仁)[1536~1618]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다. 남명(南冥)조식(曺植)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최영경(崔永慶), 조종도(趙宗道), 하항(河沆), 김면(金沔) 등과 교유하였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정(李瀞), 김면(金沔), 곽재우(郭再祐) 등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이칭 등과 함안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4년 천거로 태릉 참봉(泰陵參奉)에 임명되고, 또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599년(선조 32) 송라도 찰방(松羅道察訪)에 제수되어 3년간 재직하고 귀향하였다. 1602년(선조 35) 세자익위사 시직(世子翊衛司侍直)에 제수되었지만 부임하지 않았고, 그 해 왕자사부에 제수되어 부임하였다. 1605년 형조 좌랑에 제수되었다가 다시 군위 현감(軍威縣監)에 제수되었다. 1617년(광해군 9) 제용감 판관(濟用監判官)에 제수되었으나 노병으로 부임하지 않고 있다 다음 해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1602년 『신증 양몽 대훈(新增養蒙大訓)』을 간행하였다. 저서로 3권 1책의 『황암집(篁嵒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있는 도림 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