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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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陽沙斤山城 |
영어공식명칭 | Hamyang Sageunsanseong |
이칭/별칭 | 연화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산 60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안성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 함양 사근산성,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서문지 부근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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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2년 - 함양 사근산성,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동문지 부근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3년 - 함양 사근산성,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서문지 부근 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6년 9월 10일 - 함양 사근산성, 사적 제15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함양 사근산성, 사적으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함양 사근산성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산 60 |
성격 | 산성 |
양식 | 퇴뫼식 석축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1.2㎞[둘레] |
면적 | 116,908㎡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
[건립 경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거창군으로 향하는 국도3호선 동편에 있으며, 전라북도 남원시으로 통하는 함양읍 방면과 전라북도 장수군으로 이어지는 안의면 방향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탁월한 조망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백제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신라에 의해서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치]
행정구역상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산60번지 일원에 있다. 산성은 함양읍에서 동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연화산[443m]의 정선부를 두르는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형태]
함양군 고대산성 중 가장 규모가 큰 성곽이다. 지표조사를 비롯해 3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대략적인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함양 사근산성의 형태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성곽과 동일하게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부정형에 가깝다. 곡부와 능선을 가로지르고 있어 곳곳에 성벽과 관련된 부속시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함양군 성곽조에서는 사근산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사근산성은 군의 동쪽 17리 사근역의 북쪽에 있고, 석축성으로 둘레는 2,796척, 높이는 9척, 성내에 연못이 3개가 있다. 경신년(우왕 6, 1380)에 감무 장군철이 성을 지키지 못하여 왜구에게 함락당한 뒤에 버려진 후 수리하지 않다가, 성종 때에 다시 수축하였다.[沙斤山城, 在府東十七里沙斤驛北, 石築, 周二千七百九十六尺高九尺, 內有三池. 庚申歲, 監務張群哲, 失其城守, 爲倭賊所屠, 廢而不修, 成宗朝修築.]”사근산성은 고려 우왕 6년(1380)에 왜구와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던 산성으로, 그 밑에는 사근역이 자리잡고 있었다.
[현황]
함양 사근산성은 연화산 정선부를 두르는 둘레 1.2㎞ 정도의 퇴뫼식 석축산성이지만 곳곳에 소규모의 곡부가 있다. 성벽은 능선을 따라 외벽만 쌓은 편축식 성벽이 90%를 차지한다. 외벽은 장방형 석재로 바른층쌓기를 하였으며, 곳곳에서 수평을 맞추기 위한 1열축조와 2열축조기법이 확인된다. 성벽의 너비는 4~9m까지 편차가 매우 심한데, 편축(片築)에 의한 뒷채움한 너비가 지형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능선부는 좁은데 반해 계곡부는 넓다. 발굴조사 된 외벽 기저부에서는 기단보축이 확인되었으며, 단면 형태는 삼각형이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조사 결과 성문과 부속시설은 확인된 것이 없다. 신라 유물뿐만 아니라 백제의 모골기와가 출토된 점이 주목된다. 1966년 9월 10일 사적 제15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함양 사근산성의 축조 수법과 출토 유물로 보아 6세기 중·후반경 신라에 의해서 축성된 이후 7세기 전·중반경에 백제가 점령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신라의 서진과정이나 백제와의 공탈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