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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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旌閭 |
영어공식명칭 | Awading Filial/Chaste People or Loyal Subjects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권기중 |
[정의]
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의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을 기리기 위해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개설]
정려는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곳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했던 일을 이른다. 각 고을에서 정려 대상자가 선정되면, 그 고을의 관청이나 대상자의 직계후손, 고을의 유림 등이 중앙의 예조에 정문을 내려 주기를 청하고, 예조는 다시 왕에게 상소하여 왕의 명령에 의하여 명정(命旌)을 받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명정의 내용은 나무판에 새겨서 별도의 건물을 짓고 그 안에 보관하거나, 살던 집의 대문간에 문(門) 형식으로 꾸며 현판을 걸어두기도 했다. 정려를 받는 것은 그 자체로 개인이나 가문, 고을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며, 면세 등의 포상이 주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벼슬이 내려지기도 했다. 정려는 개인에 대한 포상의 성격을 띄지만 문중이나 마을의 경사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 대개 마을 입구의 길목에도 정려를 세웠다. 이러한 장소적 특징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보고 뉘우쳐서 착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화성 지역의 정려]
경기도 화성시에는 효자각·충열각·열녀각 등이 다양하게 분포해 있으며 대표적으로 최루백효자각, 한명윤·밀양박씨 충열각, 남양홍씨 열녀정려문 등이 있다.
최루백효자각은 고려 때의 효자 최루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비각으로 현재 화성시 봉담면 분천리에 위치해있다.
한명윤·밀양박씨 충열각은 임진왜란으로 사망한 한명윤과 그의 부인 박행장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충신, 열녀문으로, 부부의 정려가 함께 있다. 화성시 양감면에 위치해 있으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남양홍씨 열녀정려문'은 화성시 남양읍 송림리에 위치한 정려문으로, 조선 후기 문신 최태형의 부인 남양홍씨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남양홍씨는 남편인 최태형이 병을 얻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남편에게 마시게 하는 등 정성을 들였다. 이에 정조 11년[1787] 정려를 받았다.
[정려 건축의 특징]
정려 건축은 일종의 기념물로 건물의 구성이 대개 1개동으로 단촐하며 지역별 편차가 크지 않았다. 정려는 크게 목조와 석조로 나뉘는데 대부분은 목조로 구성되며, 건물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 일반적이다. 이는 정려자가 1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1인 정려자의 경우 명정 현판 1매와 정려기 정도를 걸어둘 수 있는 공간으로만 구성되어 단촐한 구성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려자가 1인 이상인 경우, 2X1칸, 3x1칸 정도의 규모로 늘어나기도 한다. 지붕은 맞배와 팔작 형태가 주를 이룬다. 지붕은 지역마다 편차가 있으나 대체로 맞배지붕이 주를 이룬다. 기둥은 대부분 두리기둥을 썼으며, 그 위에 주두가 위치하여 창방을 걸었다. 창방 위로는 화반을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화반은 악귀의 침입을 방지하고 죽은이의 염원과 산자의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