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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127
한자 大薪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개설
전 구간 대신리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6.0㎢
가구수 87가구
인구[남,여] 165명[남자 87명, 여자 78명]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내신(內薪)·외신[밖섶메]·지동(池洞)[못골]·원앙[만지]·대치(大峙)[한재] 등 5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대신리(大薪里)의 지명은 대치 마을의 대(大)자와 섶메의 섶 신[薪]자를 한 자씩 합하여 만든 것이다. 대치 마을은 원래 한재 마을이라 하였는데, 원래 뜻은 큰 고개라는 것이었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며 대치가 된 것이다.

내신 마을은 옛날에 반곡·반산으로 불러왔으나 정송암이 마을 앞에 다박솔을 심어 송림이 울창해지자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 이름에 송자를 넣어 반송리(盤松里)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마을 형국이 거위형이라고 해서 물이 필요하므로 섶메[薪山]라 불렀다고 전한다.

지동 마을은 마을 앞에 큰 연못이 있어 못골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연못 지(池)자를 따서 지동이라 하였다. 춘양면 내에서는 가장 먼저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앙 마을은 못골에서 보아 능주 원님이 있는 안쪽 골짜기가 되므로 원안골이라 한 것이 원앙골이 되고 마을이 형성되면서 원앙 마을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남일면(南一面) 내반송리(內盤松里)·외반송리(外盤松里)·지동리(池洞里)로 기록되어 있고, 1864년 『대동지지』에는 능주목 석정면(石亭面), 1895년 5월 1일 전국 행정 구역 개편에 의거 나주부(羅州府) 능주군(綾州郡) 부춘면(富春面), 1896년 8월 4일 지방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해 전라남도 능주군 부춘면,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능주군 부춘면 내신산[안섶메], 지동[혹은 못골]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3년 능주군의 폐지로 화순군(和順郡) 부춘면,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변경에 의해 화순군 춘양면(春陽面) 대신리[지동·대치리·내신리·외신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전체적으로 낮은 구릉이 펼쳐져있고 지석천으로 유입되는 개천이 대신리의 남북 방향으로 흐른다. 대신제가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안섬메 마을은 마을 뒤 북쪽으로 14㎞의 산이 있으며 동·서·남쪽은 약간의 논과 밭이 있지만 산간에 위치하고 있다. 밖섬메 마을은 남쪽과 북쪽으로 산이 있으며 마을 남쪽으로 외신제 저수지가 있고 동쪽으로 약간의 농토가 있다.

지동 마을은 서쪽으로는 제비봉[혹은 집봉]이 있고 북쪽으로는 지동제 저수지가 있다. 또 지동에서 서북쪽으로 가면 보성재[혹은 보검재]가 있으며 지동 마을은 동쪽으로 약간의 들이 있는 산간 마을로 마을 뒤에도 산이 있다. 마을은 남쪽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지동 마을에서 북쪽으로 가면 지동제 저수지가 있으며 지동에서 서북 방향으로 보성재가 있다. 만지 마을은 보성재의 북동 방향으로 있다.

[현황]

대신리춘양면의 북부에 위치한 법정리이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면적은 6.0㎢, 87가구에 남자 87명, 여자 78명으로 모두 165명이 거주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춘양면 화림리, 서쪽으로는 춘양면 양곡리, 남쪽으로는 칠송리, 북쪽으로는 도곡면 효산리, 능주면 내리가 위치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주로 벼와 보리 농사에 종사한다. 주산물은 쌀과 보리, 특산물은 담배·한봉·고추·대추 등이 있다.

유물 및 유적으로는 고인돌군, 송암정(松菴亭), 해양재(海陽齋), 해망 서원(海望書院)[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22호], 반룡재 터, 당산나무[수령 500년]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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