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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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獨上里石燈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오지호로 298[독상리 320]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이영숙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 있는 석등.
[개설]
독상리석등은 고려 시대 시중을 지낸 문헌공(文獻公) 오대승(吳大陞)이 하늘에 제사하기 위해 제작하였다.
[건립 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복현 고적조에는 현리(縣吏) 오대승(吳大陞)이 관도(官道) 남쪽에 석등 48개를 만들어 밤마다 불을 켜 놓고 하늘에 절하였더니 그 내외의 자손들이 모두 출세하고 계속하여 상부(相府)에 올랐다고 기록하여 오대승이 석등을 건립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조성 시기는 고려 말로 추정된다. 오대승의 시호는 문헌(文獻)이고 관직은 시중을 지냈으며 동복 오씨의 중흥 시조로 모후산 아래 동복에서 세거하였다.
[형태]
독상리석등은 고려 시대 조성한 이형(異形) 석등으로 높이 40㎝, 길이 164㎝, 너비 105㎝의 암반에 구멍을 파서 만든 것이다. 석등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비각의 홍살문 안에 있다. 구멍은 약간 손질을 가한 자연 암반 위에 지름 5~14㎝, 깊이 2.5~8㎝ 정도 되는 크기로 모두 54개이다. 이 구멍에 기름을 붓고 심지에 불을 켰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화순군 동복면 중심 도로인 오지호로와 면사무소로 들어가는 석등길이 만나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독상리석등은 돌담이 둘러쳐진 직사각형의 대지 위에 홍살문과 팔작지붕의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조선 초에 잡초에 묻혀 있는 석등을 수리하고 축대를 쌓았다는 것으로 보아 보호각은 조선 초기 이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670년에 후손 오시수(吳始壽)가 「석등기(石燈記)」에서 석등각 앞에 비석을 세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보호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등각은 1990년 화순군청에서 보수하였다.
보호각 안에는 석등과 함께 두 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는데 하나는 후손 오시수(吳始壽)가 1670년 전라도 감사로 부임하였을 때 석등각 앞에 비석을 세워 사적을 새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시수가 세운 비를 알아보기 힘들어 176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누각 밖에는 근래에 사십 팔 석등기(四十八石燈記)를 새긴 비를 건립하여 놓았다. 후손들은 매년 10월 첫 번째 정일(丁日) 전날 밤에 석등제를 올리고, 정일에는 문중 시제를 지내고 있다.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독상리석등은 고려 민간 신앙과 불교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석등 48개를 만들어 불을 켰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원래 구멍은 48개였던 것으로 보인다. 48이라는 숫자는 불교의 아미타불과 관련이 있다. 법장비구(法藏比丘)가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기 위하여 48개의 원을 세우고 끈임 없는 덕행으로 노력하여 48원이 이루어지면 생로병사의 고통이 없는 안락한 국토 즉,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이루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된다. 48개의 구멍은 법장비구의 48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독특한 제사가 문중제로 남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