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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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致道 |
이칭/별칭 | 세원(世元),춘산(春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규무 |
[정의]
개항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활동 사항]
민치도(閔致道)[1868~1921]는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아들과 친척들에게 100냥을 주어 심남일(沈南一) 의병진에 군자금으로 보냈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하여 정재면(鄭載冕)·주창업(朱昌業) 등과 국민당 및 대동단을 조직하였으며, 1920년에는 민영동(閔泳東)·양사형(梁士亨)·양회진(梁會津)·윤자삼(尹滋三)·정인채(鄭麟采) 등 부호로부터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 정부로 보낼 방법을 숭일 학교 교사 김정련(金正連)과 협의하였다.
또 민치도는 1920년 10월 29일 화순 군수와 능주·영광의 면장들에게 “천만(千萬)의 천군이 습래(襲來)하면 왜노의 충신은 왜노와 함께 학살할 터이니 생명을 보전하려면 속히 사직하라”는 협박 편지를 능주 우체국에 투함하였다가 이를 눈치 챈 일경에게 10월 31일 화순군 외남면 검산리에서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12일 광주 지방 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 받고 신병으로 보석 출감하였다. 그러나 7월 9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되어 8월 9일 경찰이 다시 체포하러 가자 이튿날 인근 산중에서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1977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