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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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貫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한규무 |
출생 시기/일시 | 1871년 6월 15일 - 이관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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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이관회 안규홍 의병 부대 선봉장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10년 8월 30일 - 이관회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이관회 건국 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관회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이관회 출생지 - 전남 화순 |
활동지 | 이관회 활동지 - 전남 보성|고흥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안규홍 의병 부대 선봉장 |
[정의]
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장.
[활동 사항]
이관회(李貫會)[1871~1910]의 본적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이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후 보성에서 봉기한 안규홍(安圭洪) 의병 부대에 가담했다. 1908년 2월부터 1909년 7월까지 선봉장으로 활동하며 보성·고흥 일대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특히 1908년 8월에는 파청에서 수호(水戶)와 평정(平井)이 지휘하는 일군을 격퇴하였으며, 이어 진산과 운월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승리하였다.
같은 달 24일에는 원주 기병 주둔소를 습격하여 일군 50여 명을 사살하고 물자와 화약을 노획하는 등의 전과를 거두었다. 1909년 7월 의병 부대가 해산되고 9월 안규홍이 순국하자 화순에 은신하였던 이관회는 1910년 8월 30일 일경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 포장을,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