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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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炳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규무 |
[정의]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계몽 운동가.
[활동 사항]
정병의(鄭炳儀)[1905~1954]는 1932년 11월부터 1934년 7월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현 백아면]의 면서기로 근무하다 퇴직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36년 2월 5일 북면사무소에서 면장 박경조(朴炅朝)가 도로 공사비의 면민 부담을 위해 유지들을 소집하여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하여 상세한 예산 내역의 설명을 요구하면서 “책상에서만 예산을 말하니 이해하기 어렵다. 천황도 인민보다 못한 점이 있고 인민보다 나은 점도 있는 것이므로 마땅히 예산의 내용을 상세히 발표하라”고 말하였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36년 3월 30일 광주 지방 법원에서 불경죄(不敬罪)로 징역 4월, 같은 해 5월 16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6개월, 1936년 7월 20일 고등 법원에서 징역 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병의는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화순군 북면 원리의 자신 집에서 문맹 퇴치와 농민 계몽을 위한 야학을 개설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