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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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益山王宮里遺蹟 |
영어공식명칭 | Archaeological Site in Iksan Wanggungri |
이칭/별칭 | 왕궁평,왕검이,왕금성,왕궁리성지,모질메토성,모지밀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80-1|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1109-8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이다운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6년~1977년 - 익산 왕궁리 유적 부분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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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9년 -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0년~2019년 -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 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9월 17일 - 익산 왕궁리 유적 사적 제408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7월 28일 - 왕궁리 유적에서 익산 왕궁리 유적으로 개칭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5년 7월 8일 - 익산 왕궁리 유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익산 왕궁리 유적 사적 재지정 |
소재지 | 익산 왕궁리 유적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80-1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1109-8 |
출토 유물 소장처 | 왕궁리유적전시관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왕궁리 562]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전주박물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효자동2가 900] |
성격 | 궁성 및 사찰 유적 |
면적 | 218,155㎡[약 65,700평] |
소유자 | 익산시 |
관리자 | 익산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와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일대에 있는 백제 시대 궁성 및 사찰 관련 유적.
[개설]
익산 왕궁리 유적(益山王宮里遺蹟)은 ‘왕궁평성’, ‘왕검이’, ‘왕금성’, ‘왕궁리성지’, ‘모질메토성’, ‘모지밀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와 금마면 동고도리 일대는 일찍이 왕궁이 있었던 곳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고, 이후 왕실 관련 사찰이 들어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찰은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도 법등을 이어 갔다.
익산 왕궁리 유적 중 왕궁은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기록된 백제 제30대 무왕 재위 기간[600~641]에 천도하면서 조영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보다 좀 더 빠른 제27대 위덕왕 재위 기간[554~598]으로 보기도 한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1998년 9월 17일 사적 제40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익산 왕궁리 유적 내에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다.
[위치]
익산 왕궁리 유적은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80-1번지와 금마면 동고도리 1109-8 일대에 있다. 미륵산에서 약 2㎞ 이어진 능선 끝자락의 나지막한 구릉[해발 41.8m] 위에 있으며 서쪽에는 국도1호선이 지나고, 남쪽에는 탑리마을이 인접하여 있다. 관련 유적으로는 북서쪽 약 4.8㎞ 지점에 익산 미륵사지가 있고, 동쪽 약 1.4㎞ 지점에 익산 제석사지가 있으며, 서쪽 약 2㎞ 지점에 익산 쌍릉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익산 왕궁리 유적은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해체 복원이 있었고, 1976년부터 1977년까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궁장과 건물터에 대한 부분 조사를 실시하였다. 1989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유적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를 시작하였고, 1990년부터 2019년까지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연차적으로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30년 동안의 발굴 조사 결과 11권의 중간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형태]
익산 왕궁리 유적은 전체 형태와 건물 배치가 중국 남북조 시대의 궁궐과 유사하다. 평면 장방형의 석축 성벽 규모는 동벽 492.80m, 서벽 490.30m, 남벽 234.06m, 북벽 241.39m이다. 성벽에는 7개의 문지와 수구, 암거를 설치하였다. 내부는 돌로 축대를 쌓아 경사면을 평탄하게 조성한 후 전반부는 궁궐로 사용하고, 후반부는 후원으로 사용하였다.
[출토 유물]
익산 왕궁리 유적은 금제 영락(瓔珞), 유리구슬, 어린석(魚麟石), 도가니, 수막새 등의 기와류, ‘수부(首部)’명 인각와, ‘왕궁사(王宮寺)’·‘대관궁사(大官宮寺)’·‘대관관사(大官官寺)’명 명문와, ‘관궁사(官宮寺)’명 토기, 중국제 청자 연화준(蓮花樽), 화장실 뒤처리용 나무막대 등 1만 1000여 점이 출토되었다.
[현황]
익산 왕궁리 유적은 2011년 7월 28일 정식 명칭이 ‘왕궁리유적’에서 ‘익산 왕궁리 유적’으로 변경되었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유적 전체 면적의 3분의 2 정도를 발굴 조사하였고, 추후 남은 3분의 1 지역과 왕궁 외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의의와 평가]
익산 왕궁리 유적은 마한(馬韓)의 기준(箕準) 도읍설, 백제 무왕(武王)의 천도설(遷都說) 또는 별도설(別都說), 고구려 안승의 보덕국(報德國) 도읍설(都邑說), 후백제 견훤(甄萱)의 도읍설 등이 다양하게 제기되었던 곳이지만 발굴 조사 결과 왕궁의 중심 시기는 7세기 전반 백제 제30대 무왕 대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익산 왕궁리 유적은 2015년 7월 8일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