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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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馬都土城 |
영어공식명칭 | Geummado Fortress |
이칭/별칭 | 저토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아리랑로 9-30[서고도리 산14]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이문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8년 - 금마도토성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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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해지 일시 | 1984년 9월 20일 - 금마도토성 전라북도 기념물 제70호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1년 - 금마도토성 시굴 조사[성벽 일부 확인] |
훼손 시기/일시 | 2015년 - 금마도토성 남쪽 일대 성벽 훼손되어 복토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7년 - 금마도토성 시굴 조사[추정서문지]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금마도토성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금마도토성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아리랑로 9-30[서고도리 산14] |
성격 | 성곽 |
양식 | 테뫼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약 484m[둘레] |
면적 | 약 17,579㎡ |
관리자 | 익산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백제 시대 토성.
[개설]
금마도토성(金馬都土城)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일원에 축조된 백제 시대 토성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원형으로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구조는 성벽과 황의 이중적 구조로 축조된 판축 기법을 사용한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산성 내 유일한 정상부 평탄지는 규모가 가로 60m, 세로 40m 정도로 넓은 편이다. 평탄지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과거 초석 등이 확인되었던 것으로 보아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8년 지표 조사와 1991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친 조사 결과로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상부대관(上部大官)’명의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또한 축○(祀○), 지(止), 병(丙), ○조(○助) 등이 적힌 다수의 인장와, 치미륵사(治彌勒寺), 금마저성(金馬渚城), 미륵사(彌勒寺), 관(官), 대신모(大新謀)가 새겨진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금마도토성은 1984년 9월 2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금마도토성에 대한 연혁을 알 수 있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작성된 『고적조사자료(古蹟調査資料)』에 따르면 “금마면 동고도리 읍치에서 북방 3정(町)거리의 성황산(城隍山) 위에 주위가 4정 정도 되는 토성이 있는데, 중앙에 성황단이 있다.”라고 하여 이를 ‘성황산성’으로 부르기도 하며, 또한 성황산 외에도 ‘귓대숲’, ‘행정산’, ‘여단재’ 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금마도토성의 원래 이름과 관련해서는 ‘저토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원과 관련하여 여러 이야기가 전한다. 백제의 ‘금마저(金馬渚)’에서 온 ‘저토성(渚土城)’으로부터 ‘저(渚)’를 ‘돗(猪)’로 잘못 적어 ‘돗토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1700년대 제작된 『금마지(金馬志)』에서는 사직단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저성’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웅덩이 저(瀦)’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내부에서 출토된 ‘금마저성(金馬渚城)’ 기와편은 어원에 대해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여단(厲壇)을 설치하였다고 하며, 일제 강점기에는 군대를 훈련시키거나 말을 달리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두 차례에 걸친 조사 결과 토성 내 출토 유물로는 백제 시대 기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통일신라 시대 유물로는 평기와와 함께 막새류와 명문와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들은 인접한 익산 미륵사지와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하며,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7세기 초반에서부터 통일신라 말 혹은 고려 초까지 토성이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금마도토성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산14번지 일대에 있으며, 금마도토성이 위치하는 구릉은 해발 87m 내외로 높지 않고 익산 지역 성곽 중 가장 낮은 곳에 있다.
[형태]
금마도토성의 규모는 둘레가 약 484m 내외이며, 정상부의 토루를 기준으로는 약 369m 정도이다. 전체 면적은 약 1만 7579㎡으로 익산 지역 성곽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편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원형에 가까우며, 정상부 봉우리 주위를 둘러싼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구조는 성벽과 황의 이중적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판축토루를 구축하여 성벽을 축조하고 전방에 자연 경사가 완만한 지점과 능선부에는 성벽 밖으로 황을 둘른 결과이다. 또한 경사가 급한 지형에는 토루 아래로 교통로를 시설하였다. 성벽 구조는 생토면을 경사지게 굴착한 후 앞쪽에 목주를 세우고 내부를 판축하여 조성하였으며, 동남 모서리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동쪽과 북쪽, 서쪽 일부는 자연 경사가 완만한 지역으로 황을 설치하였고, 나머지 남쪽과 서쪽 일부는 교통로만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금마도토성은 현재 산성 전체가 수목이 울창하며, 성벽 둘레로 대나무가 밀식되어 있다. 산성 내에는 군사훈련장으로 다수의 참호를 조성하였다. 남사면 일원을 밭으로 경작하기 위하여 무단 훼손이 이루어져, 2015년 금마도토성 남쪽 일대 성벽이 훼손되어 복토 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지형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금마도토성은 익산토성과 더불어 왕궁리 유적과 가장 인접한 산성이다. 부분적인 성벽 구간 시굴·발굴조사를 통하여 백제 시대에 축조된 판축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성벽 외곽으로 황과 토루를 조성한 이중적인 방어 구조는 익산 지역 백제 산성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이며, 이는 인근 익산토성 및 낭산산성과 동일하다. 더불어 이러한 산성과 연계하여 미륵사지에서 익산 왕궁리 유적으로 통하는 교통망의 방어선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