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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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慧峰院木造菩薩立像 |
영어공식명칭 | Standing Wooden Image of Bodhisattva of Iksan Hyebongwon temple |
이칭/별칭 | 익산 혜봉원 목조보살입상,혜봉원 보살입상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군익로11길 29-11[모현동1가 719-16] 혜봉원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여진 |
제작 시기/일시 | 17세기 - 혜봉원 목조보살입상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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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12월 14일 - 혜봉원 목조보살입상 익산시 향토유적 제13호 지정 |
현 소장처 | 혜봉원 - 전라북도 익산시 군익로11길 29-11[모현동1가 719-16] |
성격 | 불상 |
재질 | 목조 |
크기(높이) | 153㎝ |
소유자 | 혜봉원 |
관리자 | 혜봉원 |
문화재 지정 번호 | 익산시 향토유적 제13호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혜봉원에 있는 조선 후기 보살상.
[개설]
혜봉원 목조보살입상(慧峰院木造菩薩立像)은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혜봉원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보살입상이다. 원오(元悟)를 대표 조각승으로 충신(忠信), 청허(淸虛), 신현(信賢), 신검(神劒) 등 5명의 조각승이 제작한 4구의 불상 중 한 구이며,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보물 제1842호]과 동일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에서는 조성 시기와 조각승 및 제작지가 기록된 발원문이 발견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산인(山人) 의암(儀庵)이 1597년 정유재란 때에 북암(北庵)이 소실되어 밭으로 변하여 있는 것을 보고 1601년 법당을 새로 짓기 시작하였고, 1605년 8월부터 11월까지 의암(儀庵)과 김문의(金文義)가 발원하여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 등 네 보살상과 약사여래도, 아미타여래도, 지장보살도, 시왕도 등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혜봉원은 1894년(고종 31) ‘삼곤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955년 금산사 승려 혜봉이 중창하여 혜봉사라고 하였다. 혜봉원 목조보살입상은 2002년 12월 14일 익산시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혜봉원 목조보살입상은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보주연화문과 와문이 장식된 크고 화려한 보관을 착용하고 있다. 얼굴은 턱이 둥글며 네모진 형태로 두툼한 눈두덩이와 반개한 눈, 원통형의 코, 미소를 머금은 입술에서 온화한 인상을 준다. 대의는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과 동일한 변형우견편단으로 대의 자락은 왼쪽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완만하게 늘어져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은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완만하게 내려와 배 부분에서 아래로 흘러내려 있다. 양팔에 걸쳐져 아래로 펼쳐진 소맷자락은 새의 날개처럼 좌우로 펼쳐져 있다. 천의와 군의에 표현된 옷주름은 간결하면서 날카롭게 처리되어 있다. 노출된 가슴에는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과 동일한 ‘X’자형의 목걸이 장식과 수평의 승각기가 표현되어 있다. 수인은 왼손은 위로 올리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고 연화가지를 잡고 있는데 지물(持物)[부처나 보살, 천왕 등이 그들의 권능이나 자비를 상징하면서 손에 지니고 있는 물건]은 후보된 것이다.
[특징]
혜봉원 목조보살입상은 부드럽고 사실적인 조각 기법을 바탕으로 한 안정된 조형감을 보여 준다. 살이 오른 풍만한 얼굴과 부푼 눈두덩이와 오뚝한 콧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소 등 조각승 원오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혜봉원 목조보살입상은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과 같은 형식으로 조선 1605년 조각승 원오가 제작한 조각상이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까지의 불교 조각계를 연결시켜 주는 원오유파의 조각의 형성과 흐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불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