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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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泉庵 |
이칭/별칭 | 옥천사(玉泉寺)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주용로 227-164[옥거리 57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경석 |
건립 시기/일시 | 892년 - 옥천암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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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중창 시기/일시 | 1798년 - 옥천암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98년 - 옥천암 1차 중수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19년 - 옥천암 2차 중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8년 - 옥천암 삼성각에 독성 탱화 봉안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9년 - 옥천암 관음전에 신중 탱화 봉안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9년 - 옥천암 삼성각에 칠성 탱화 봉안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11월 10일 - 옥천암 전통 사찰 제70호로 지정 |
중수|중창 시기/일시 | 2001년 - 옥천암 신축 |
중수|중창 시기/일시 | 2009년 - 옥천암 보수 |
현 소재지 | 옥천암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주용로 227-164[옥거리 575-1] |
성격 | 종교 시설 |
창건자 | 정현 선사 |
전화 | 063-432-2165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암자.
[개설]
옥천암은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로 1988년 11월 10일 전통 사찰 제70호로 지정 등록되었다. 옛 용담현 서쪽 천태산(天台山) 옥폭동(玉瀑洞)에 있는 이 암자는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고 옥류천(玉流泉)이라고 불리는 맑은 시냇물이 사철 흐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구전에는 892년(신라 진성 여왕 6)에 정현 선사(定玄禪師)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데, 정현 선사는 『삼국사기』에 894년 최치원이 합천의 가야산 해인사에 은둔할 때 승려 현준 등과 함께 도우(道友)를 맺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798년(정조 22) 용담 현령 김이례(金履禮)가 옥천암을 중창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이 옥천암의 실질적 창건으로 추정된다. 이후 1898년(광무 2)에는 현령 김우식(金宇植)이 1차 수리를 하고, 1919년 2차 수리를 하였음이 관음전 마루에 걸린 「옥천암 재차 수리기」에 보인다.
현재 옥천암 건물은 2001년에 옛 모습대로 ㄱ자형으로 신축하였다. 2009년에는 대대적인 석축 보수를 하였고, 지금의 시설 현황으로는 총 4동[법당 1동, 요사 1동, 기타 2동]으로 대지 면적은 2,404㎡이다.
[활동 사항]
용담댐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수몰된 이후로는 찾아오는 신도는 없다. 현재 승려 경호 등 승려 몇 사람이 10년째 이곳을 지키며 수도하고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현재 옥천암에는 관음전과 삼성각, 요사 등의 전각이 있지만 1919년 김우식에 의해 중수되기 이전 시기의 불교 유적은 없다. 현재 옥천암에 있는 불교 유물은 1919년 이후의 것이다.
[관련 문화재]
최근에 복원된 사찰 건물로 지정 문화재는 없다.
[관련 문물]
현재의 관음전은 2001년 신축한 건물로 높은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이익공의 흩 처마를 올린 ㄱ자형 팔작지붕이다. 관음전에는 목조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고 아미타 극락 회도와 신중탱화가 걸려 있다. 관음상은 1900년대를 전후해 처음 봉안된 듯하다. 신중탱화는 1929년에 조성되었으며, 아미타 극락 회도는 화기(畵記)가 없는데 그림으로 보아 신중탱화와 비슷한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초익공 흩 처마로 팔작지붕이다. 「시주 방명기」에 1980년[불기 2524]에 신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성각 안에는 독성상을 비롯해서 독성 탱화·칠성 탱화·산신 탱화 및 시주 현판이 걸려 있다. 독성 탱화는 1928년 김우식이 봉안했으며, 칠성 탱화는 1929년 승려 춘담(春潭)이 그렸는데 당시 주지는 유원섭(柳愿燮)이었다.
요사(寮舍)는 정면이 4칸으로 추측되는 맞배지붕이지만 지금은 현대식으로 보수되어 원래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상량문에는 1958년에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