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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죽현리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22
한자 鎭川竹峴里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 산 3-192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
집필자 박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분묘
건립시기/연도 조선시대~근대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 산 3-192 지도보기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에 있는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분묘 유적군.

[개설]

죽현리 유적은 토광묘(土壙墓)·회곽묘·석곽묘(石槨墓) 등이 확인된 분묘 유적이다.

[형태]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된 유구는 토광묘[널무덤] 3기에 불과하여 다소 무리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에서 근대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해당하는 것은 7호·9호·10호·11호 토광묘이다. 7호 토광묘의 벽감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인화승렴문[찍은 새끼줄무늬] 대접과 10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대접은 15세기 후반~16세기 초에 해당하는 것으로 7호 토광묘와 10호 토광묘는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9호 토광묘는 출토된 백자대접과 접시로 보아 16세기 중반·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1호 토광묘는 출토된 청동숟가락이 술부는 7호 토광묘의 것과 유사하고 손잡이 부분은 9호 토광묘의 것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그 조성 시기가 7호 토광묘와 9호 토광묘의 사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2단 굴광의 토광묘와 회곽묘는 조선 후기 이후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2단 굴광의 토광묘는 유물이 전혀 없으며, 관못을 사용하지 않은 목관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양상은 다른 지역에서 조사된 2단 굴광의 토광묘도 동일하다. 회곽묘 역시 부식된 관재가 일부라도 남아 있는 것이 대부분이며, 유물과 관못이 보이지 않고 인골(人骨)이 잔존한 경우가 많아 조선 후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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