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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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파정(息波亭)은 1616년(광해군 8) 이득곤(李得坤)이 두건리 앞 냇가에 세운 정자로 앞면 2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1983년 백곡저수지를 확장하면서 두건리가 수몰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처음 정자를 세울 당시의 두건동은 시인 묵객들에게 무릉도원의 절경을 연상하게 하는 독서지소(讀書之所)로 이름이 높았다. 빼어났던 경치는 식파정 팔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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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시루봉에 있는 초기국가시대에서 일제강점기 절터. 백련암 터는 본디 길상사의 옛터로서, 일제강점기 백련암(白蓮庵)이란 작은 암자가 들어섰다가 이 암자도 없어지면서 빈터로 남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길상사가 태령산(胎靈山)에 있는 사찰로 기록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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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채지홍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을 예찬한 칠언율시의 한시.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여 8세에 이미 한시를 지어 세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성리학적 소양이 높았다. 한때 충청도사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당시의 당파 싸움에 혐오를 느껴 관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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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터. 봉암 향현사(鄕賢祠)는 조선 후기 진천의 대표적인 처사인 채지홍(蔡之洪)[1683~1741]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채지홍은 본관이 인천으로, 호는 삼환재(三患齋) 또는 봉암(鳳岩)이다. 16세 때에 송시열의 제자인 수암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 되어 문장과 성리학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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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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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잠덕산 지장사 터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지장사 터 부도는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산 40-8번지 옛 절터인 지장사 터에 있는 석종형 부도로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부도는 묘탑을 가리키는 것이며, 묘탑은 사리를 봉안한 탑이므로 이와 같은 종류의 탑은 모두 묘탑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묘탑, 곧 부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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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 할아버지는 삼환재(三患齋) 채지홍(蔡之洪)[1683~1741]으로,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인천채씨(仁川蔡氏) 시조 채선무(蔡先茂)는 고려 중엽 벼슬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에 이르렀는데 인천에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인천을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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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사장와(舍藏窩).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채영용(蔡領用)이다.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는데, 8세 때 “달이 동산 위에 떠오르니 그 모습이 태극과 같구나[月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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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서 개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비 개덕 이야기」는 문화유씨(文化柳氏) 집안의 유복자가 된 유의직(柳義直)을 정성을 다해 키워 유씨 문중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는 노비 개덕(介德)에 대한 인물설화이다. 이에 유씨 후손들은 개덕의 묘를 유씨 선산에 모시고 지금까지 시사를 지내고 있다. 진천 고을의 유림들은 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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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채지홍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백사장의 빼어난 경관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여 8세에 이미 한시를 지어 세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성리학적 소양이 높았다. 한때 충청도사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당시의 당파 싸움에 혐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