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변면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시대구분의 기준은 시간적 의미에서 보면, 고려 이전을 고대, 고려를 중세, 조선을 근세, 문호개방 이후 일제강점기를 근대, 그리고 해방 이후를 현대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자 한다. 물론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라는 용어는 단순한 시간의 전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회발전 즉 고...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한천리·합목리·인산리에 걸쳐 있는 들. 덕산들은 덕산과 들로 나뉘며, 여기서 덕산은 덕산읍(德山邑)을 가리킨다. 덕산읍은 본래 덕문면(德文面)이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방동면(方洞面)·소답면(所畓面)·산정면(山井面)·북변면(北邊面)·남변면(南邊面) 각 일부와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孟洞面) 일부를 병합하여 덕문면의 ‘덕’자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덕산읍 관할 행정 기관. 덕산읍 행정복지센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은 1914년 이전 13개 리로 구성되어 덕문면으로 칭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방동면, 소답면, 산정면, 북변면, 남변면, 음성군...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덕리·차상리, 북변면의 지석리·분암리, 남변면의 신정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삼덕리(三德里)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천읍에 편입되었다. 차령산맥(車嶺山脈) 줄기가 서쪽으로 무이산[462m]에서 만뢰산(萬賴山)[612m], 남쪽으로 문안산(文案山)[4...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성평리(聖坪里)의 ‘성(聖)’자와 지석리(支石里)의 ‘석(石)’자를 따서 성석리(聖石里)라 하였다. 성평(聖坪)은 지금의 진천중학교 앞으로 흐르던 냇가 주변에 형성된 들이다. 1444년(세종 26)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하여 청주 초정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있던 냇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이후로 당시 지명이던 북평...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진천군 남변면(南邊面) 지역을 읍내(邑內)라 부른 데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上里)·하리(下里)의 각 일부와 남변면의 관문리·상장리를 병합하여 읍내리(邑內里)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 진천면이 진천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진천읍 읍...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행정구역. 진천(鎭川)이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때 진주(鎭州)에서 비롯되었다. 진주는 고려 건국 초기 청주 호족 세력의 반란을 진압한 곳, 또는 고려군이 진수(鎭守)한 곳이라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이 건국한 뒤에는 고려 후기 이후에 무질서하게 승격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을 각 읍락의 호구(戶口)와 전결(田結) 수에 따라 재조정하고 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