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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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川鄭澈墓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산 14-1[송강로 367-4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승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6년 1월 5일 - 진천 정철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10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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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천 정철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묘소 |
건립시기/일시 | 1665년 |
관련인물 | 정철 |
높이 | 160㎝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산 14-1[송강로 367-40] |
소유자 | 영일정씨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묘소.
[개설]
정철(鄭澈)[1536~1593]의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시인이다.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같은 가사 작품을 남겼다.
[위치]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으로 가다 사석삼거리를 지나면 도로변에 진천 정송강사(鄭松江祠)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문백면 봉죽리 쪽으로 3㎞쯤 들어가면 어은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 진천 정송강사가 있다. 진천 정철 묘소는 진천 정송강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300m쯤 올라가면 환희산 중턱에 위치한다.
[변천]
진천 정철 묘소는 본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예전의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에 있었으나, 1665년(현종 6)에 송시열(宋時烈)이 현재의 자리를 정하고 후손 정양(鄭瀁)이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어은골로 이장했다. 어은이란 지명의 유래도 묘소와 관련이 있는데, 송시열이 묏자리를 구하다 이곳의 지형을 보고 고기가 숨어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어은(漁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형태]
정철의 묘는 부부 합장묘로 봉분 앞에는 상석과 문관석, 망주석을 갖추었고, 오른쪽에 묘비를 세웠다. 봉분의 높이는 160㎝이며, 둘레는 20m이다. 묘비는 방형 대석 위에 높이 150㎝, 너비 52㎝, 두께 35㎝의 비신을 세우고 가첨석을 얹었다.
[금석문]
정철의 묘비에는 ‘유명조선좌의정인성부원군시문청호송강정공철지묘(有名朝鮮左議政寅城府院君諡文淸號松江鄭公澈之墓)’와 ‘정경부인문화유씨부좌(貞敬夫人文化柳氏祔左)’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현황]
진천 정철 묘소는 1996년 1월 5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영일정씨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를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가사문학의 대가인 정철의 묘소가 진천군 지역에 있으므로 해서 국문학도에게는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