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A01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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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
진천군으로 들어서서 문백면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약 5㎞를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양 옆으로 초록 바다를 연상케 하는 논들이 펼쳐지며 구곡리로 향하는 길을 열어 준다. 오랜 옛날부터 진천군은 물산(物産)이 풍부해서 생거진천(生居鎭川)이란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그러한 진천 지역에서도 유명한 것이 진천들과 덕산들, 이월들과 같은 넓게 펼쳐진 들판에서 수확되는 진천 쌀이다.
그런데 구산동마을은 진천 지역의 다른 마을들과 달리, 생활의 터전이 되어 주는 논과 밭이 마을 밖에 위치해 있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바깥에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산동마을은 주변을 둘러싼 산들 가운데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해발고도도 높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제 집 마당 드나들 듯 언제나 산 속을 들락거렸다. 그런 이유 때문에도 구산동마을에서는 유독 산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오고 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거북 모양을 하고 있는 산과 구산동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의연하게 감당하고 있는 지밋산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수구막이 되어 준 지밋산]
문백면에서 구곡리 구산동마을로 가는 길은 한 갈래밖에 없다. 그 길을 따라가다 왼편으로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는 외구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얼마쯤 더 가면, 양쪽으로 묵직하게 버티고 서 있는 숲 사이로 내구, 중리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내구, 중리마을을 들어서면 지밋산이 마치 마을을 두 팔로 감싸 안은 듯한 모습이 인상 깊게 느껴졌다. 마을의 가장 양지바른 쪽을 커다랗게 둘러싸고 있는 산은 언뜻 자애로우면서 위엄 있어 보였다. “저기 높은 저 산이 지밋산이여.” 하고 우리에게 산 이름을 가르쳐 준 분은 구산동 내구마을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임상직 할아버지였다. “저 산이, 지금으로 말하자면 동네로 들어오는 홍수를 막는 거지. 이게 덕문이들을 전부 막았어.”
지밋산은 예부터 마을의 홍수와 화를 막아 주는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부모산’으로도 불리고, 아무리 큰물도 산 앞에서 돌아서 나간다고 하여 ‘수구막’으로도 불린다고 임상직 할아버지가 전해 주었다. 이야기를 전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영험한 산의 기운에 의지하며 힘을 얻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참깨더미를 보고 도망간 중국 부자]
내구, 중리마을에서는 지밋산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오고 있었다. 그중 지밋산을 둘러친 참깨 더미에 놀라서 한 걸음에 도망을 갔다는 중국 부자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람이 있었다. 왕골을 이용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고 있는 임기용 할아버지였다.
“옛날에 한 천석꾼이 이 지밋산에서 농사를 지었어. 그런데 중국에서 백만장자가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는,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해서는 참깨더미로 지밋산을 덮어 놓은겨. 참깨가 이게 귀한 거 아녀, 옛날에 중국 사람이 ‘니가 더 부잔가, 내가 더 부잔가 한번 해 보자 하다가, 이 천석꾼이 지밋산에 둘러 논 참깨더미를 보고는 깜짝 놀라더라는겨. 밭을 얼마만큼 붙여서 참깨더미가 그만큼이냐고. 촌사람한테 속은 거지.”
전해 오는 이야기들이 그렇듯 내구, 중리마을에서 전해 오는 중국 부자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중국 부자가 내기를 걸어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엉[짚더미]을 엮은 뒤 마을의 대표 산인 지밋산을 둥그렇게 둘러쳐서 마치 참깨더미처럼 보이게 하여 중국 부자 코를 납작하게 눌렀다는 지혜담이다.
이렇듯 내구, 중리마을 사람들에게 지밋산은 마을을 수호해 주는 성스럽고도 고마운 산이자, 얼마든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수 있는 친근한 벗이나 다름없는 듯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