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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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道雜歌 |
영어음역 | Namdo Japga |
영어의미역 | Miscellaneous Songs of Namdo |
이칭/별칭 | 남도민요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의신면 돈지리 583번지 |
집필자 | 나승만 |
[정의]
전라도와 경상도 남서부, 충청남도 일부 지역에서 전승되어오는 잡가.
[개설]
이병기는 처음에 사설시조를 잡가로 지칭하였다가, 후에는 민요·속요·타령 등을 통칭하는 명칭으로 잡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 김사엽은 잡가는 항간에서 잡되게 부르는 소리로 광대라는 직업적 가수에 의하여 창작되고 성행한 것이 일반에게 전창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규정이든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인 개념정의를 할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용어이면서도 문학계와 음악계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개념규정도 이에 준하여 생각하여야 한다.
광의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잡가의 의미는 상층문화권의 정통가요인 가곡·시조에 비해서 정제되지 못한 노래, 곧 잡스럽거나 속된 하층문화권의 노래·속가, 또는 잡가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것은 경기체가와 더불어 고려시대 가요의 한몫을 차지하던 장르의 잡가와는 다른 용어인바, 조선후기 광대나 사당패 등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하여 집중적으로 창출된 잡가(속가)를 지칭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소리’라고 지칭하는 용어사용에도 한 가지 맥락이 담겨 있다. 조선후기에 문화구조가 크게 달라지면서 민요가 적극적인 구실을 하게 된다. 민중의식의 각성이 민요를 통해 구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속악이 일어났고, 국문시가는 물론 한시 또한 민요에 접근하여 민요에서 소재와 표현을 다수 차용하게 된 것이다.
서울의 「아리랑」을 전국에서 부르게 되었고, 함경도의 「어랑타령」이 남쪽지방에서도 불리게 되었다. 「산타령」은 선소리패라는 놀이패가 맡아서 부르는 흥미로운 공연물로 발달하였다. 그래서 전문적인 놀이패가 부르는 세련된 양식의 민요를 잡가라고 지칭하게 되면서 토속민요의 범주를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자 ‘노래’와 ‘소리’를 구별하여야만 했고, 정악인 가곡을 잡다한 공연물과 구별하고자 하는 편에서는 가곡만 노래이고, 그 밖의 것들은 소리라고 하였다. 이런 구분법에 의하면 민요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옛 민요를 창작한 새로운 노래들을 ‘중년소리’라고 한 것도 경우는 다르지만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조선시대의 양반층에서 즐겼던 상층문화의 음악을 정악이라고 하고, 상민 등 하층에서 즐겼던 기층문화의 음악을 민속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뒤 민중의 생활현장을 떠나 특정 전문 음악인에 의해 불려 진 노래나 기악곡 등을 통속음악, 특히 잡가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의 잡가는 조선 말기에 형성되어 번창하다가 1830년을 전후하여 유행가 등 서양풍의 노래에 밀려난 노래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잡가는 조선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학 장르라는데 문학사적 의미가 있으며,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과도기적 장르로 꼽기도 한다.
다만, 조선시대의 최종 장르이기 때문에 종래부터 있었던 시조, 가사, 판소리 등의 원용이 가능하였으나 새로운 사조에 밀려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각사나 협률사와 같은 극장의 등장이나 1930년을 전후하여 번창하기 시작한 레코드 산업 등으로 통속문화가 오히려 일부분은 번창한 맥락도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 민속음악 전반이 서양풍의 음악에 밀려났던 한편, 민중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잉태되고 육성되었던 민속음악이 그들의 손을 떠나 흥행성에 바탕한 특정 전문인들에 의하여 재창조된 맥락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에서 잡가는 그간의 토속민요들을 근대적 조류에 적응시키려고 재창조 또는 각색하였던 전문인들의 노력 속에서 형성되었던 것인데, 다시 서양풍의 음악에 밀려 더욱 전문화된 ‘꾼’들에 의해서만 전승되는 현실을 맞고 있는 것이다.
[채록/수집상황]
남도잡가는 고종 때 전라남도 옥과에서 풍류하던 율객 신방초가 만든「화초사거리」를 기점으로 두는데, 그 가락에 많은 소리꾼이 나오게 되었다. 조선말기에는 장판개, 조진영, 김정문 등이 남도잡가의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은 원각사, 광무대 등을 중심으로 「보렴」, 「화초사거리」, 「남도산타령」, 「새타령」, 「성주풀이」 등의 남도잡가를 하였다.
1920년대에는 김정문, 조상선, 한독득, 강남중, 송기덕, 신옥란, 신정옥, 신연옥, 김금화 등이 남도잡가의 대가로 이름이 났고, 김추월, 신금흥, 김녹주, 이화중선 같은 판소리 명창들도 남도잡가를 잘 불렀다.
1930년대부터 광복 전까지는 협률사, 창극단, 연예단 등을 중심으로 많은 창극과 잡가가 연주되었으며 엄준옥, 김점용, 권득진, 조요실, 성원목, 신마산포 등이 더불어 활약하였다.
광복 후 현재까지는 판소리 창자들이 대개 남도잡가를 겸하여 부르고 있어 잡가나 민요의 명창이 따로 독립해 있지는 않은 편이나 대개 오정숙, 신유경, 김효순, 성우향, 성창순, 신영희, 강정자, 김동애, 안숙선, 김영자, 윤소인, 김경숙, 전정민, 강송대 등이 그 뒤를 이어오고 있다.
판소리 창자들이 주로 남도잡가를 병행한다는 것은 판소리와 남도잡가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은 다시 판소리보다 훨씬 앞 시대에 만들어진 민요의 중요성과 가치를 시사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은 명창 박동진 옹이 “남도민요를 잘 하면 판소리는 누워서 떡먹기”라고 표현한 데서도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남도잡가는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에도 판소리 창자들이 병행해온 관례 등으로 인해 그 전승과 보존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았다. 다만, 민요를 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행자들을 중심으로 남도잡가의 맥락과 전통을 살려나가는 것은 판소리 창자들의 남도잡가 연행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판단을 한다. 진도지역의 강송대 등은 남도민요를 생업으로 연행해 온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구성]
남도잡가는 일하면서 부르는 토속민요 외에 「농부가」, 「육자배기」, 「진도아리랑」, 「강강술래」, 「흥타령」, 「개고리타령」, 「강강술래」, 「남원산성」, 「쾌지나 칭칭 나네」 등이 있다. 특히 「보렴」, 「화초사거리」,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흥타령」, 「개구리타령」, 「새타령」, 「성주풀이」 등을 잡가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남도민요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경기민요와 서도소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도소리는 평안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민간에서 주로 불린 노래를 말하며, 직업적인 소리꾼에 의해 불렸고 민요와 선소리(입창), 시창, 잡가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서도소리 중 잡가에 해당하는 「관산융마」와 「초한가」는 서도소리라는 이름으로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민요는 서울과 경기도 지방을 중심으로 불리던 민요를 지칭하며, 경기소리는 전술한 지역에서 주로 불리는 민속 성악과 직업적 소리꾼에 의해 불리는 민요와 선소리(입창), 앉은소리인 잡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중에서 경기잡가는 12잡가와 휘모리잡가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는데, 그중 긴잡가는 경기민요라는 이름으로 197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다.
남도민요(잡가)는 경기민요 또는 서도민요의 잡가를 모방하여 창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남도민요는 판소리 서편제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육자배기토리, 또는 육자배기 선법을 고스란히 채용하고 있어서 남도무가와 함께 판소리 선법의 토대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사]
〈「육자배기」〉(후렴 생략)
1.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이나 살더란 말이냐
죽엄의 들어서 남녀노소 있느냐
살어 생전에 각기 맘대로 놀
2. 꿈아 꿈아 무정한 꿈아 오시는 님을 보내는 꿈아
오시는 님은 보내지를 말고 잠든 나를 깨워주니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서 이별없이 살-
3. 새야 새야 청조새야 가지 가지 앉지를 말어라
그나무 고목이 되고 보면은 날과 일반이로-
4. 주야장 밤도 길더라 남도 이리 밤이 긴가
밤이야 길까만은 님이 없는 탓이로구나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서 긴밤 자룹게 새-
5. 인연이 있고도 이러는가 연분이 안될라고
이지경이 되드냐 전생자생 무삼죄로
우리둘이 삼겨를나서 이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아이고야 답답한 이내 심정을 어느 누가 알 -
6. 공산 명월아 말 물어 보다 임그리워 죽는 사람
몇몇이나 되드냐 유정 낭군을 이별하고
수심 끓이어 못살겄네
언제나 유정하신 님을 만나 만단회포를 풀-
7. 춥다 춥다 내품안에 들어오너라
비개가 높거든 내팔을 비고
내사람 간 그날 잠을 못이뤄
8. 어젯밤 꿈에는 기러기 보이고
오늘 아침 무등시에 까지 앉어 짖었으니
행여나 님이 올려나 행여나 편지가 올거나
기다리고 바랬더니
일락서산에 해는 떨어지고
월출동정 달이 솟네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 만단회포를 풀 -
9. 사랑이 모두가 무엇인지 잠들기 전에는 못잊겄네
잊으리라 잊으리라 비개 비고 누웠으니
내눈에 얼굴이 삼삼하여서 나는 못잊겄네
10. 연당호 밝은 달아래 채련하든 아이들아
십리장강 배를 띄워 물결이 곱다고
자랑을 마러라 그물에 잠든 용이
깨고 보면은 풍파일까 염려로 -
11. 내정은 청산이요 임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흘러가건만 청산이야 변할소냐
아마도 녹수가 청산을 못잊어 빙빙 감돌아간다.
12. 작은 진밤 들어갈제 향단에게 붙들리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정신 없이 들어가서
만석은 부여잡고 악성 통곡 울음을 우니
사랑의 인력으는 차마 볼 수가 없네
〈「흥타령」〉(후렴 생략)
1. 한많은 요세상 어디로 발길을 옮겨야
심산의 길을 물어 어느 낙을 만날소냐
아서라 괴롭다 이세상 다버리고 저 금강산 찾어가
석가여래나 지킬라네
2. 눈비 뿌리는 해변가에 한 없이 앉어서
갈매기는 엄마 잃고 엄마 엄마 부르나니
엄마는 간곳 없고 눈비만 뿔리네
3. 꿈속에서 보이는 님은 신의가 없다고 일렀더니
오매불망 그리울 적에 꿈이 아니면 어이보리
저멀리 멀리 그리운 님아
꿈이라고 생각을 말고 자주 자주 보여주면
너와 일생을 보내주려마
4. 사랑이 좋다해도 황금에는 못견디어
없는 금전아 어디로 갔느냐
이내 곁에 있어주면 알뜰한 내님과 살어볼라네
5. 슬픔이 사랑인가 사랑이 슬픔인가
말도 없이 흘러가는 저 구믈이 얄미워라
비웃는 듯 얄밉게도 담담히 흘러가네
6. 어쩔거나 어쩔거나 어쩌다 이 일을 당하였느냐
사랑도 날 버리고 모두다 저를 버렸으니
어드메로 갈 것인가
태산을 넘어가면 평지가 있다는데
갈수록 산이네 그려
인생길이 서글퍼라 나는 어디로 어찌 할거나
7. 달이 뜨네 달이 뜨네
다정 마당에 달이 뜨네
저울 가고 봄이 오면 제비떼도 돌아오건만
장에 가신 우리 님은 온다 간다는 말이 없어
종천에 뜬 저달님아 이내모습 비쳐다오
우리님 계신곳을 영락없이 벼쳐다오
8. 야속하다 세상인심 사랑에도 구별이 있나
명월아 밝은 달아 말있거든 말해다오
맺어질 사랑인가 못맺을 운명인가
내마음속 병든 줄은 그대는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9. 잠아 오너라 한 없이 잘란다
귀찬한 이 세상 행복도 나는 싫고
영원한 꿈나라가 그리워라
10. 아깝다 내청춘 언제 다시 올거나
철따라 봄은 가고 봄따라서 청춘가니
오는 백발을 어찌를 할거나
[현황]
남도잡가는 넓게는 전라도와 경상도 남서부, 충청남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 서남부지방의 민요를 통칭하는 말이나 협의로는 전라도 지역에서 불리는 민요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2001년 9월 27일에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남도잡가」를 지칭한다.
현재 남도잡가의 기·예능보유자로는 강송대(64)가 있으며, 전수장학생으로는 노부희(30)와 전수자 강은주 외에 수많은 전수자들이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전라남도 지방은 예부터 판소리의 고장으로 명창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광복 뒤 현재까지 판소리 창자들이 대개 남도잡가를 겸하여 부르고 있어 잡가나 민요의 명창이 따로 있지는 않다. 이것은 남도지방의 전문예능인들은 19세기 이후에 판소리라는 새로운 장르에 치중해서 잡가를 별로 부르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그래서 남도잡가에는 경기잡가나 서도잡가처럼 불균등장단으로 짜이거나 한 가지 음악어법으로 일관된 노래는 한 곡도 없고, 판소리 장단과 음악어법을 차용한 노래만 있다.
이러한 남도소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남도잡가에 대한 연구는 이제까지 관념적이고도 피상적이었으며, 장르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채 단편적인 언급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곧 남도잡가 자체가 음악적으로 다양하고 독특한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서 형식적·내용적인 측면에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남도잡가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민요인지 판소리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전승되고 있는 지역에서의 역할과 보유자 및 그 전수자들이 명칭에서부터 종류들을 체계적으로 전수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