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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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太玉 |
영어음역 | Yang Taeok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선 |
성격 | 예술인|국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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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 |
성별 | 남 |
생년 | 1918년 |
몰년 | 2003년 |
대표경력 |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
상훈 | 제3회 신라문화제 국악기악 부분 입상|제4회 신라문화제 기악 특장부분 최우수상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개설]
“북을 칠려면 양태옥이만큼 쳐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춤에 일가를 이룬 양태옥은 1918년 군내면 정자리에서 출생하였다. 「진도 북놀이」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비무계 출신으로 정의현과 함께 진도국악원을 설립하는 등 진도 국악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경력]
국악협회 전라남도위원으로 재직하였다.
[활동사항]
비무계로 신청을 출입하면서 민속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양태옥은 1954년 진도군 의용소방대장을 역임하면서 소방대농악을 발전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이때 유행한 말이 “북을 치려면 양태옥이만큼 쳐라.”이다. 알려지기로는 김성남으로부터 북을 배웠다고 한다.
1970년 일본 만국박람회 초청공연, 1987년 유럽 칼스루헤 초청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85년에는 전국 국악기악 부문 경연대회인 제3회 신라문화제에서 입상하였고, 1987년 일본 명무전과 광주시립극단 공연 등을 통해 북놀이 전승에 앞장섰다. 또한 제4회 신라문화제 기악 특장부 전국경연대회에서 북춤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이외에 한국일보사가 주최하는 명무전에 1975~1987년까지 6회 연속 초청되었으며, 2002년 12월에 개최된 ‘북춤명인전’ 등에서 공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왔다.
1987년에 「진도 북놀이」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면서 박관용·장성천과 함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2003년 노환으로 타계하였다.
[저술]
1990년에 『사물놀이교본』을 편찬하였고, 1993년에는 『민속놀이 진도신청농악』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민속놀이 진도신청농악』에서는 진도 농악을 신청농악으로 규정하고 신청농악의 이해와 편성, 진풀이 등의 기본을 설명해놓았다.
[의의와 평가]
양태옥류의 북춤은 신청농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무계로서 신청에 가입했던 경력이 있고, 소방대 농악을 이끌며 북춤을 계승해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현과 함께 진도 최초의 국악원인 진도민속국악원을 만들어 후학지도에 열성을 쏟았던 양태옥은 「진도 북놀이」 예능보유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진도의 민속음악과 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