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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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珍島輓歌 |
영어음역 | Jindo Manga |
영어의미역 | Jindo Funeral Song |
이칭/별칭 | 상여 소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나승만 |
[정의]
상여 의례에서 불려지는 노래.
[개설]
「진도 만가(珍島 輓歌)」는 1975년 남도문화제에서 입상을 했을 때 이를 연구했던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원래 진도에서는 「상여 소리」라고 했는데, ‘상여소리를 한다’, ‘상여운구를 한다’, ‘상여(喪輿) 나간다’ 등의 동사(動詞)적 개념으로 사용해 오던 말이다.진도만가(珍島輓歌)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씻김굿의 길닦음곡을 차용한 연희집단의 유장한 만가(輓歌), 즉 신청 집단의 「상여 소리」가 있는가 하면, 일반적으로 진도 내에서 행해지던 「상여 소리」가 있다. 전자는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진도만가(珍島輓歌)를 지칭하는 것이고, 후자는 「애 소리」와 「가난 보살 소리」를 위주로 하는 일반적인 「상여 소리」를 지칭한다. 특히 신청 집단의 「상여 소리」는 재산이 넉넉한 집안에서 전문 연희패들을 불러서 행하는 것으로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 삼현육각의 반주가 곁들여지는 것이 이런 경우다.
김이익[1743~1830]이 지은『순칭록(1804)』을 보면, 진도의 상여 행렬에서는 요령 대신 북을 친다는 대목이 나온다. 소치 허련[1809~1892]이 1873년 진도군수에게 건의한「변속팔조(變俗八條)」에도 여전타고(輿前打鼓, 상여 앞에서 북을 치는 것)를 금하라는 내용이 있다. 이런 일부의 기록들을 통해서, 상여 앞에서 악기를 치면서 운구하는 진도의 상례 풍속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진도뿐만이 아니라 고려시대의 기록에서도 보이는 전국적인 민간 습속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 기록들은 다른 지역에서 이미 없어진 풍속이 진도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구성]
「상여 소리」는 상여운구와 상례절차에 따라 음악이 구분된다. 전문패들을 불러서 상례를 치를 경우, 관을 집에서 내올 때는 불교의식으로 염불을 외우고, 발인제를 지낸 후에는 삼현육각의 반주에 의해 불경 내용을 긴염불소리, 중염불소리, 자진염불소리로 나누어 부른다. 여기서 전문패들에 의해 불리던 「상여 소리」는 또 두 가지 군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김혜정(경인대학교 교수)에 의하면, 긴염불-중염불-자진염불로 이어지는 구조는 씻김굿의 길닦음 구조인 염불류의 악곡이며,「애 소리」-「천근 소리」-「제화 소리」 등은 민요 계열의 악곡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자는 고정적으로 굿에 사용되는 기본적인 무가의 일종이고, 후자는 민요에서 수용된 것들로 씻김굿에서 차용한 것이라 유동적이라고 한다.
[가사]
문화재로 지정된 진도만가의 운구순서와 소리순서 및 대표적인 가사를 보면 아래와 같다.
① 긴염불(진양조, 「제보살 소리」라고도 한다)
받음소리: 제보살/ 제보살이로구나/ 나무여/ 다냐아/ 나무나무 나무여/ 아미타불
메김소리: 늙어늙어 만년주야/ 다시 젊기 어려워라/ 하날이 높다해도/ 초경에 이슬 오고/ 북경이 멀다해도/ 사시행차가/ 왕애를 하네
② 중염불(중모리)
받음소리: 나무야 나무야 나무나무 나무야 나무 타불로 길이나 닦세
메김소리: 산에 나무를 심어 유전 유전이 길러내야 고물 고물이 단청일세
③「제화 소리」(중모리)
받음소리: 제화 좋네 좋을 시구나 명년 소상 날에나 다시 만나보자세라
메김소리: 제화 좋네 좋을 시구나 명년 소상 날에나 다시 만나보자세라
④ 자진염불(자진모리)
받음소리: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메김소리: 가자서라 가자서라 북망산천을 가자세라
⑤「애 소리」(중모리)
받음소리: 에에 에헤야 에헤헤 에헤헤 헤에에야
메김소리: 가시는 날자는 정해졌으나 오시는 날짜는 기약이 없네
⑥「천근 소리」(중중모리)
받음소리: 아 아 에헤요 아 아 에헤요 천근이야 천근이야
메김소리: 깊은 물에 다리를 놓아 만인공덕에 다리 천근
⑦ 아미타불(자진모리)
받음소리: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메김소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 산천을 나는 간다
받음소리: 에헤 에헤 여허라 가래 로세
메김소리: 일세동방 다굴적에 청용한쌍이 묻혔으니 알아감시로 다궈나 보세
⑨「자진다구질 소리」
받음소리: 어기야 청청 다구요/ 어기청청 다구요
메김소리: 인제가면 언제오나/ 어기청청 다구요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근래에는 없어졌지만 원래 상여를 운구할 때 눈이 네 개 달린 방장쇠(방상씨라고도 한다.)를 앞세우는 것이 전통이었다고 한다. 허옥인은 고군면 석현 김참사의 출상 때에 방장쇠를 사용했으며, 소전 손재형(서예가, 국회의원)의 조부 출상 때에도 방장쇠를 사용했다고 그의 책에 기록해 놓고 있다.
그가 기록한 상여운구의 순서를 보면, 대체로 방장쇠[方相氏], 만사(輓詞)잡이, 명정(銘旌)잡이, 공포(功布)잡이, 횃불잡이, 운아삽선(雲亞霎扇), 영여(靈輿), 삼현육각(三絃六角), 무녀와 길잡이, 상여(喪輿)와 상두꾼, 남녀 상자(喪子), 남녀 호상(護喪) 순으로 나타난다. 이는 지금의 「상여 소리」와 만가의 행렬순서와는 다소 차이를 보여준다. 씻김굿 예능 보유자인 박병천의 구술에 의하면 한 마리의 백마와 피리잽이 등이 참여한 상여운구의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같은 행렬의 순서와 삼현육각의 음악적 구성이 언제 근래 형태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제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관련의례]
진도만가에서 흥미로운 것은 질베 행렬에 관한 부분이다. “「진도 만가(珍島 輓歌)」는 출상 때, 북, 장고, 꽹과리, 피리 등의 악기를 치고 불면서 만가를 부른다. 이와 같은 진도의 출상 풍속은 육지나 다른 도서 지방과는 전혀 달라서 여자들이 상여 앞에 늘어뜨린 긴 베를 잡고 호상하고 만가를 부르면서 묘지까지 가며, 봉분을 쓸 때는 달구질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여자들로 구성된 호상꾼들의 질베 행렬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1970년 이후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정숙자(씻김굿 박병천의 처)가 소포리에서 한춤을 가르치고 나서 그 기념으로 ‘호상계’를 조직하였는데, 1974년 한남례(소포리 민요소리꾼) 시아버지 출상에서 처음 시도했다고 하기도 하고, 198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출연 때 시도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1970년대 주재일(지산면 소포리, 미국 LA 거주)에 의해, 지산면 유목리에서 처음 시도되었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치선(진도 판소리 선생)이 1959년 목포에서 타계하였을 때, 40여 명 되는 제자들과 목포 유지들이 꽃상여를 만들고, 흰 질베로 상여 앞에 줄을 띄워 목포 시내를 돌았다는 증언이 있다.
신치선이 본래 담양 사람이지만, 진도에서 반평생을 살면서 판소리 수학에 열을 쏟았고, 그 제자들이 훗날 진도 판소리의 명성을 유지했던 점으로 보아 진도에서의 질베 행렬에 대해서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북 등의 악기를 치면서 운구하는 상례풍속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질베를 잡고 상여의 앞쪽에서 두 줄로 호상하는 풍속은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 진도에서의 이 풍속의 시발은 지산면 소포리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현황]
1975년「진도 만가(珍島 輓歌)」(「생이 소리」라고 표현됨)가 남도문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것은, 1970년대부터 진도만가에 대한 외부적 관심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이어 1979년 제14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는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후 진도만가는 축제와 상반되는 민속의례라는 점 때문에 부침(浮沈)을 거듭하다가, 1987년 8월 25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예능보유자로는 김항규와 설재복이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