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565 |
---|---|
한자 | 崔小心 |
영어음역 | Choe Sosim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나승만 |
성격 | 예술가|여성국악인 |
---|---|
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
성별 | 여 |
생년 | 1908년 |
몰년 | 1992년 |
본관 | 경주 |
대표경력 |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기·예능보유자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개설]
최소심은 1908년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성장배경이나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최소심은 젊어서부터 강강술래뿐만 아니라 「진도 아리랑」도 잘 불렀으며, 특히 밭일을 하면서 부르는 「남도 들노래」를 비롯하여 많은 민요 가창에 능했다. 양홍도(梁紅道)의 뒤를 이어 1976년 강강술래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목소리가 곱고 성품이 차분해서 동작이나 소리가 정적인 미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활동사항]
강강술래는 전라남도 서해안지방에서 성행한 놀이로, 전라남도 해남군의 우수영과 진도군 일대가 그 중심지이다. 노래와 놀이가 동시에 행해지는 이 놀이는 우수영제와 진도제로 나뉘는데, 진도제는 「육자배기」조의 영향으로 소리에 힘이 든다.
강강술래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등록될 때 ‘해남 우수영제 강강술래’와 ‘진도제 강강술래’로 나뉘어 지정되었다. 이후 진도제 강강술래 보유자였던 양홍도가 사망하여 최소심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1971년에 강강술래 기·예능보유자였던 양홍도가 사망할 당시만 해도, 강강술래 전수생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당시 한 달분의 생계보조비가 너무나 열악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고심한 진도문화원에서 1975년에 ‘강강술래 메김 소리 경연대회’를 개최하였고, 차점자와 하인순(河仁順)[진도읍 동외리]을 제치고 군내면 둔전리의 최소심이 발탁되었다.
이후 최소심은 박용순 외 많은 후배들을 양성하다가, 1992년 3월 15일 향년 84세로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