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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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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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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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춘경(春卿). 호는 서계(西溪). 능허(凌虛) 박민(朴敏)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황해도수군절도사를 지낸 박창윤(朴昌潤)이며, 어머니는 진주하씨(晋州河氏)로 하달영(河達永)의 딸이다.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에 의하면, 1677년(숙종 3)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 5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1706년(숙종 32) 사마시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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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정용균(鄭龍均)에게 내린 정려비 및 관련 고문서. 1. 고문서 5점 가. 상서문 : 1879년(고종 16) 선비 208명의 연명으로 정용균의 효행을 관찰사에게 올려 정표(旌表)해 주기를 요청하는 문서이다. 가로 128.5㎝, 세로 57㎝의 저지(楮紙)에 해서(楷書)로 쓰여져 있고, 관찰사의 뎨김[題音]은 초서(草書)로 앞뒤에 쓰여 있다. 정용균은 평소 아침저녁으로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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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첨경(瞻卿), 호는 양정재(養正齋). 아버지는 대사헌에 증직된 설총(雪聰) 하철(河澈)이며, 어머니는 고령박씨 박신(朴紳)의 딸이다. 1664(현종 5) 하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육례(六禮)에 통달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부친이 별세하자 예에 따라 상을 치르고 여막을 지켰는데, 모친에게 문안...